Page 84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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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어두운 영적 눈을 뜨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깨닫고, 받
아들이게(믿게) 한 것이고, 계속해서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여 하
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삼위일체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니 그것은 완전한 구
원입니다. 그것은 온전히 신(神)적인 것, 신의 충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
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인본주의(Humanism)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초월자, 전능자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범신론(Pantheism)의 종교들(힌두교, 불교)이나, 초
월자 신을 믿되 그런 신이 세상에 와서 실제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것(즉, 신의 내재)을
부인하는 이슬람도 결국 인간이 지혜/지식이나 선행을 쌓아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
다는 자력구원론(自力救援論)을 가르칠 수밖에 없는데, 인간이 전적으로 혹은 신과 협동하
여 이루는 구원이 진정한 구원이겠습니까? 모든 인간적인 것은 한계적인 것, 불완전한 것
이고, 죄성을 띠는 것 아닙니까?
그런 종교들에 반하여 기독교는 전적으로 삼위일체적 하나님, 즉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초월자로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실제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
원, 그러기에 완전한 신적인 구원을 약속하고 선물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종교입니다.
2. 하나님/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회복된 ‘의인’들에게 요구되는
하나님/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의지와 순종
1) 믿음으로 얻는 칭의의 복음에 구조적으로 내포된 의로운 삶에 대한 요구
그런데 우리의 칭의/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
는 그것을 우리의 지혜나 선행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것이라고 요약되는
칭의론은 많은 피상적인 사람들에게 방종을 위한 면허증쯤으로 오해되어 왔습니다. 그 현
상은 바울 시대 때부터 일어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6:1에서 자신이 로마서의 그 시점
까지 전개한 복음,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
혜에 의해 의인이 된다는 복음에 대해서, 율법주의자들이 던진 “그렇다면 계속 죄를 저질
러도 되겠네. 그러면 그럴수록 은혜가 더 클 것 아닌가?”라는 냉소적인 비판에 대해 답합
니다.
바울은 이미 로마서 3:5~8에서 비슷한 비판을 인용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은혜
로만/믿음으로만 의인 됨의 복음이 바울 당시부터 탈법주의(antinomianism)의 비윤리적
삶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오해와 비난을 받은 것입니다.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고대 교회
의 일부 그리스도인들도 비슷하게 바울의 복음을 윤리적 삶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았으나,
그들은 그것이 도리어 자신들을 윤리적 삶의 의무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주는 것이라고
좋아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구원파 추종자들이 이 점에서 옛 영지주의 이단자들의 후예
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심각한 문제는 한국에서 오늘날 정통 교회의 목사들이라고 자
처하는 사람들이 같은 사상을 은근히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의인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로 하여금 덕 입게 하
는 믿음이 과연 무엇인가, 즉 믿음의 성격에 대해서 설명함으로써, 이런 오해가 옳지 않음
을 보여 주고, 믿음으로 의인 된 자는 사실 더 이상 ‘죄의 종’(즉, 사탄의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의의 종’(즉,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 함을 역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