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PHOTODOT 2017년 1월호 VOL. 38 JANU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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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김흥구, 좀녜_우도, 비양동 (Woo-do, Biyang-dong). 2010
                (하) ©김흥구,좀녜_서귀포 사계리, 김유순(Seogwipo Sagye-ri, Kim Yoo-soon). 2004
                                                                                         김흥구
                                                                                        <좀녜>




                                                                            ‘좀녜’는 해녀의 제주 방언으로 일반적으로 바다에서 물질하는 여
                                                                     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좀녜’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는 오랜 세월 제주 땅에
                                                                     서 살아간 해녀들만이 가지고 있는 희미한 기억이다. 그 의미를 깨닫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가다 보면 해녀와 제주도에 얽힌 아픈 역사를 만나게 된다.
                                                                     긴 시간 동안 해녀를 기록해온 사진가 김흥구는 이제 해녀들의 기억과 제주
                                                                     섬의 역사를 포함하는 그들의 모습을 본다. 만약 그가 담담하게 촬영한 해녀
                                                                     의 일상적인 생활상에서 아련한 무언가를 느낀다면 ‘좀녜’라는 이름의 기억
                                                                     이 작품에 묻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좀녜’ 이름에 담긴 두 가지 기억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기에 앞서 아스라한 ‘좀녜’ 이름의 기억을 들여다보려
                                                                     한다. 제주도는 오랜 정치적 소외와 자연재해로 자급자족을 할 수 없는 메마
                                                                     른 땅이었다. 그러한 땅의 척박함으로 인해 섬사람들은 바다를 의지했다. 과
                                                                     거 조선왕조시기에 전복, 해삼, 미역 등 해산물 진상을 위한 고된 일이 그들
                                                                     에게 부과됐다. 예전에는 포작배(혹은 포작인)라고 불리던 남자가 일을 감당
                                                                     했지만 지나친 부역에 시달린 남자들이 섬을 떠났고, 그 책임과 노동은 고스
                                                                     란히 여자가 짊어졌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해녀가 물질을 업으로 하게 된 배
                                                                     경이며 ‘좀녜’의 오래된 기억이다.
                                                                     또 하나의 아픈 기억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
                                                                     도는 민중항쟁과 탄압의 근거지였다. 4.3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제주 주민들
                                                                     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었다.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연계된 남로당 제
                                                                     주도당의 무장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4.3사건
                                                                     은 가슴시린 제주의 역사다. 현재 제주도에 거주하는 해녀 할머니들은 근대
                                                                     를 살아오며 이 사건을 직접적으로 겪은 세대이며, 그들의 가족이나 친척 중
                                                                     사건 당시에 세상을 떠난 이들이 많았다.


                                                                     나와 제주도와의 인연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물음을 가졌던 시기에 우연히 방문한
                                                                     섬에서 해녀를 마주하며 시작되었다. 뭍에서 섬으로 섬에서
                                                                     다시 뭍으로, 그 물리적 시간과 거리는 그녀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아픔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내주었고
                                                                     그 길에서 나는, 나의 시선이 들춘 개인의 아픔은 제주도의
                                                                     역사가 할퀸 상처임을 깨닫게 된다. - 작가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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