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PHOTODOT 2017년 1월호 VOL. 38 JANU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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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BORDER LINE, 두 개의 깃발과 두 개의 망원경, 연천, 2013          POST-BORDER LINE, DMZ의 겨울 풍경, 화천, 2013







                         ‘108인의 초상’                                  것이 두 시리즈가 공통적으로 발하는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제목에 특별한 함의를 두고자 한 것은 아니지만, 배경이 되는 것은 두어가           BMW포토스페이스에서 선보이고 있는 《가려진 지속》은 어떤 디스플레이
                  지 정도 있다. 처음 본 작업을 시작할 당시 생존해 계셨던 할머님들이 백 여         적 고민을 거쳤나?
                  덟 분이셨다. 그리고 이 숫자가 우연히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짊어져야 할          전체적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망해볼 수 있게끔 하는 것으로 갈피를 잡
                  108가지 번뇌를 연상케 했다.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셨던 할머님들          았으며, 신작인 <POST-BORDER LINE>에 좀 더 공간을 할애했다. 전시 초
                  의 지난 삶, 그것은 물론 그 이상의 고통이었으리라 감히 짐작하지만 상징적          입에서 두 시리즈를 같이 마주한 후 파노라마 형식으로 보여지는 분단 풍경
                  으로 맞닿는 부분을 떠올리게 됐다.                                의 아이러니한 단편들, <POST-BORDER LINE> 작업을 감상하며 나아간다.
                         ‘POST-BORDER LINE’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들이지만 파노라마 형식으로 구성된 사진 속 그
                  뜻을 풀이하자면 말 그대로 ‘경계 이후’이다. 아직 완전히 끝난 작업은 아니         이면의 불편함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며 재인식을 유도한다. 그런 뒤 제일 안
                  지만, 한국전쟁 이후 ‘분단’이라는 의미를 현재의 시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해          쪽 흡사 작은 밀실과도 같은 동선 마지막 공간에 <108인의 초상>, 위안부 할
                  보고 싶었다. 이를테면 휴전 이후 분단은 어떤 정치적 수단에 이용되어졌는           머님들의 영정사진과도 같은 검은 초상과 맞닥뜨리도록 구성했다.
                  지, 어떤 소비적 가치에서 사용되어 왔는지에 대한 물음이자 건드림이다. 많          〈108인의 초상〉과 〈POST-BORDER LINE〉은 각기 다른 입장적 차이를
                  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이념의 전쟁, 그 ‘경계 지움’ 너머에 아무         가지고 있긴 하지만, 역사적 사실이나 인식에 대해 오롯이 바라보지 못한 채
                  렇지 않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아이러니와 블랙코미디를 진지하게 시각화시            ‘유기’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볍지
                  키고 싶었다.                                            않으며, 더욱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108인의 초상〉과 최신작인 〈POST-BORDER LINE〉을 아우르는 지점은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내 작업은 단순히 ‘역사에 관한’ 작업은
                  무엇인가?                                              아니다. 나 역시 ‘역사 자체’에 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렇게 바
                  일단 물리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궤            라봐주시는 것도 일리가 있으며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말하자면 나의 관심
                  를 같이 한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말씀드렸듯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하고            은 사실 ‘잘못된 것’에 대한 것이다. 삶의 저변에 가려진 채 존재하는 오류들
                  지금까지 이어온 작업이라는 의미도 있다. 작품 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비           을 드러내고 담론을 직조하며 불편한 진실을 바로잡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록 공통적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면모를 들추고 있지만 두 시리즈 모           이는 사진이 매체적 범주에서 벗어나 진정한 예술로 나아가는 일과도 맞닿
                  두 대한민국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기반한 작업이다. 오류를 인식하고 반성           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한 척도로써 작용
                  하며 수용하고, 수정해나갈 수 있는 여지를 이끌어내고자 함이다. ‘익숙(하          할 때 예술은 가치를 획득한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나의 시선에 들어
                  다고 착각)하지만 낯선 역사’에 대해 직시하고 함께 바로잡아보려는 것, 이          오게 된 것들을 자연스레 기록하고 담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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