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PHOTODOT 2017년 1월호 VOL. 38 JANU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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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BORDER LINE, 풍경사진과 창 밖 풍경, 김포, 2013
분단을 다룬 〈POST-BORDER LINE〉 시리즈는 철원이나 파주
등, 분단선 인근의 일상풍경을 담은 것이다. 폐허로 변한 노동 당사 위를 한 더 이상 쓸 수 없는 무기들이나 선전도구들은 공원 등으로 옮겨가서 기성 체
쌍의 두루미가 날아가는 작품부터 목련이 가득 핀 통일공원에 이르기까지, 제를 선전하는 전시품목으로 제 2의 삶을 산다. 분단 이후 수 십 년 간 실제
언뜻 서정적이기도 한 풍경이지만 동족상잔이 일어났던 역사의 현장에는 죽 전쟁은 일어난 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 무기들의 원래 목적은 선전이라고 해
음의 기호가 배회한다. 그것들은 아름답기에 더 비극적인 역설적인 풍경들 야 할 것이다. 선전도 자신과 적대입장에 있는 이들을 죽이곤 하므로 그것은
이다. 피사체가 자연이 아닌 인공물, 가령 전쟁 유물 등에 맞춰지거나 관광객 여전히 무기인 셈이다. 전쟁이 정치의 지속이라면, 정치 또한 전쟁인 것이다.
들이나 군인, 지역 주민 등이 등장하면 다소간 풍자성이 드러난다. 가령 북한 차진현의 작품에는 멀게는 한국전쟁, 가까이는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
군이 뚫었다는 제3땅굴을 참관하고 있는 신병들과 그 앞을 지나는 할머니의 격이 일어났던 장소에는 당시 긴박한 상황을 증거 하는 수상한 물건들이 박
시큰둥한 표정을 대조시킨 작품이나 ‘안보 현장’을 관람하는 관광객의 시점 물관의 유물처럼 보존되어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잊혀진 역사들을 호명하
이 드러나는 작품 등이 그렇다. 그의 작품에서 6.25 전쟁 당시에 남은 유물들 면서 어떤 기억을 촉구하는 방식은 일종의 재현의 형식을 갖춘다. 그러나 그
은 결코 자연적 시간의 흐름에만 내맡겨져 있지 않다. 그것들은 ‘안보 관광객’ 러한 재현물에는 관제 민족 기록화같은 허술함과 상투성이 선명하다. 차진
들에게 보여 지기 위해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물건들이기도 하다. 한시대의 현은 그런 것들을 구경거리로 삼고 체제 선전에 활용하는 어떤 세력을 암시
기술력과 이데올로기가 새겨진 그것들은 자연 속에 배치된 예술품과 비견될 함으로서 역사의 현장을 소격시킨다. 심각한 역사는 심란한 풍경으로 변조
만하다.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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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8.indb 28 2016-12-23 3:1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