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PHOTODOT 2017년 6월호 VOL.43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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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 Vertigo I #CFJ1301, 잉크젯 안료프린트, 가변크기, 2015
법 밖에 존재하는 법이라는 역설
전시제목 ‘비상국가’는 독일의 법철학자 칼 슈미트에게서 빌려온 개념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비상국가 II – 제4의 벽》은 유럽에서 열렸던 《비상국가 I》
슈미트는 나치 집권에 사법적 외관을 씌워준 인물로 ‘수권법’ 이른바 비상사 보다 더 깊게 사회 내부를 비춘다. 두 전시의 시간적 간격 사이에 이명박, 박
태법 제정에 중요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 그의 저작물은 좌우를 막론하 근혜 정부의 통치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근
고 근대국가의 작동방식을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영향 대국가가 자신의 권력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동원해온 경찰력의 풍경을 담은
을 끼쳤다. 노순택은 ‘비상국가’라는 개념이 식민지 해방 이후 전쟁과 분단을 〈비상국가〉 시리즈의 새작업과 더불어 〈남일당디자인올림픽〉, 〈검거〉, 〈현
겪으며 항구적 비상사태에 놓인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단서를 기증〉, 〈가뭄〉, 〈가면의 천안함〉, 〈강정-강점〉, 〈고장난 섬〉, 〈거짓으로 쌓아
제공해준다고 생각해왔다. “주권자란 예외적 상태에서 결단할 수 있는 자며, 올린 산〉 등의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제4의 벽’은 연극 무대를
헌정을 수호하려는 자는 헌정 밖에서 헌정을 수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슈미 하나의 방으로 상정했을 때 배우와 관객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뜻한다. 어
트의 유명한 명제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군사쿠데타로 얼룩진 우리의 현 쩌면 남북한의 경계선은 서로의 극단적 연극 상황을 보여주는 제4의 벽은 아
대사를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본질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 닐까. 그리고 이 벽은 한국 사회 내부로도 향해 있다. 오늘의 한국사회 현실
이라는 명제는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배신의 정치와 헌정농 은, 분명코 현실이되 믿기 어려울 만큼 연극적이어서 초/비현실적이다. 이 비
단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현실적 무대의 안과 밖, 당신이 선 곳은 어디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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