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인천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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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으로 각종 첩보 활동을 펼쳤던 켈로 부대원들은 9월 10일 밤
따라서 등대 점화는 상륙 전에 반드시 필요했으며, 영흥도를
현재 이곳에는 전쟁 당시 특공대원들의 공적과 희생된 켈로부대
팔미도에 들어가 등대를 조사하고, 팔미도등대 탈환 및 점등을
인천상륙작전 당시 팔미도등대 옆 수로로 들어오지 않으면 배 밑의
1950. 9. 15
# 08. 인천으로 가는 길을 밝혀라!
팔미도등대 탈환 기념비 1903년 6월 1일, 한국 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인천 팔미도등대가 90촉광의 석유 등을 밝혔다. 높이는 7.9m, 지름이 약 2m인 등대는 해발고도 71m의 팔미도 꼭대기에 세워져 10km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6·25전쟁 때는 인천상륙작전의 길잡이 역할을 한 팔미도등대는 1954년 자가발전시설을 갖추고 백 열등으로 불을 밝혔고, 1992년에는 태양광 발전 장치를 설치했다. 2003년 한국 등대 설치 100주년을 기념해 해양문화유산으로 지정돼 100년 동안 불을 밝혀온 팔미도등대는 영구 보존하게 되었다.
팔미도등대 암초들 때문에 군함들이 들어 올 수가 없었다. 대원들의 젊은 넋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 팔미도등대 점등
20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