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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와 함께 보는 정대위 목사 이야기
여기서 잠깐! 그의 신앙과 사상, 삶의 체계를 형성하게 했던 숭실의 전통
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897년,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인 베어드
는 사저에 13명의 학생을 모아 사랑방 교실을 연다. 이것이 ‘숭실학당’의 출
범이었다. 이후 1900년에 수업연한을 5년으로 하는 정식 중학교 교과과정
을 운영하였고, 1904년 세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숭실대 최은수 교
수는 이 학교의 전통을 ‘민주적 자주와 자립 전통, 기독교적 박애와 봉사 전
통, 진취적 미래 지향 전통’으로 꼽는다.
“숭실(崇實)”이라는 이름은 실학의 실사구시 정신을 따른 것인데, 서양의
기독교 교육을 조선의 전통 사상에 접목시키고자 했던 선교사들의 노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숭실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토양에 의해 설립되
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조선선교부의 허가를 받아
1906년에 장로교회 감리교가 함께 연합하여 대학을 설립하게 되는데, 이는
한국교회 연합 사업의 이상적인 모델이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 선
교의 대부분은 지역과 사역을 분할하여 진행하였다. 이로 인해 교단주의와
분파주의가 생성되는 문제가 야기되었다. 그러나 숭실은 연합의 정신을 따
라 만들어졌고 같은 정신을 학생들에게 물려주었다.
모란봉이 달아오다 돌어앉으며
대동강수 흘르나려 감도는 곳에
백운간에 솟아있는 층층한 집은
합성숭실학교
숭실 숭실 합성숭실 만세
<숭실 교가 >
숭실대학의 유명한 졸업생 중 한명인 한경직 목사는 교가 가사에 나오는
“합성(合成)숭실학교”는 이 학교의 창학 정신을 알리는 표현이며 연합과 일
5)
치의 정신 곧 에큐메니칼 정신을 담은 것이라 회고했다. 한경직 목사, 정
대위 목사뿐 아니라 수 많은 숭실 출신들이 교단과 지역을 초월한 에큐메
니칼운동에 헌신했던 토양이 바로 ‘숭실’이었던 것이다.
5) 임희국 <공감, 교회역사공부> chapter 4, 장로회신학교출판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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