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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와 함께 보는 정대위 목사 이야기
1935년. 일본 동지사대학 신학과 입학 (1941년 졸업)
당시 동지사대 신학교는 대학령에 의해 정규로 설립인가를 받은 유일한
대학이었는데, 대학 문학부 신학과로서 2년 내지 3년제의 일반 대학 예과
를 졸업한 학생을 받아들이는 학교였다. 정대위 목사는 이 학교에 2년제 대
학 예과에 입학한다.
그때 학교의 두 기둥은 아시다 게이지와 히노 마스미였는데 이 둘은 서
로 상반된 신학을 대표하고 있었다. 히노는 거의 극단적인 자유주의 신학
자였으며 비판신학을 가르쳤다. 이에 반해 아시다는 신정통주의 입장을 가
르치면서 자유주의 신학과 싸웠다. 신정통주의 신학자인 바르트를 일본에
가장 먼저 소개한 사람이 바로 아시다이다. 극단적으로 다른 이 두 종류의
신학이 한 학교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데, 이런 한류와 난류
가 정대위 목사 신학에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하다.
동지사에서 정대위 목사는 성경신학에서 가르치는 코이네 그리스어
(Koine Greek) 공부로 만족하지 않고 철학과와 영문과에서 병설한 고전
6)
희랍어 강좌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산스크리트어를 함께 배우
는데, 이는 훗날 정대위 목사에게 폭넓은 종교학 공부의 기반이 된다.
이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정대위 목사가 쓴 졸업 논문의 내용은 <칼빈의
자연신학>으로, 라틴 문헌을 주로 다룬 교회사 논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
의 평생 신학적 과제를 발견하는데 바로 ‘기독교와 한국의 접촉 초기에 관
한 공부’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정대위 목사는 칼빈 전공자가 아닌 기독교
와 한국 전통에 대한 종교학자로 살아가게 되는데, 이 당시 정대위 목사는
남들이 가지 않는 종교학과 종교사회학의 길을 어렴풋하게나마 보게 된다.
정대위 목사는 동지사에서의 선택을 “그다지 현명한 것이 아니었을런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며 “성경이나 조직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제법 갖추어져 있었는데 … 하는 망설임이 오늘에도 내게는 완전히 해소되
지 않았다”고 이후 술회했다.
6) 헬레니즘 시대와 고대 로마 시기에 사용되었던 고대 그리스어의 일종으로 공통 그리스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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