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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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놓아야 되는데 물자가 못 들어온다, 또는 그 보철공이 일을 게을리
           한다든지 일을 마구 해서 며칠 입으면 헌 솜뭉치가 꾸역꾸역 나오게 되는

           경우, 그런 모든 경우에 나는 핏대를 올리며 형리에게나 수인에게나 듣기

           싫게 잔소리도 했고, 싸우기도 했다. 그래서 그자들이 나를 ‘수인전옥’이

           라고도 불렀다. 즉 징역꾼, 전옥이란 뜻이었다.

            나는 지금 이야기한 그 굉장한 헌 털뱅이 깁기 외에 서적 정리하는 것을
           했다. 수인들에게 읽히기 위해서 준비해 놓은 책자들을 매달 한 번씩 수

           인의 청구에 의해서 돌려볼 수 있도록 정리하는 일이다. 책자를 만지게 되

           는 만치 다른 수인들에 비해서 좀 더 독서할 기회를 가졌었고 따라서 감

           옥에서 준비한 책이란 것은 대개는 읽었다. 나는 그 안에서 비로소 사서

           삼경이란 것을 통독해 보았고 한시(漢詩)의 작법이나, 한시가 어떤 것인
           가도 약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독서의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그때 왜경방침은 러시아어, 영어에 관한

           것은 무엇이던 열람 금지이고 사회과학에 관한 것은 더군다나 한 책도 없

           을 때다. 그래서 나는 입옥되자마자 독일어를 시작했었다. 하도 그것만
           들여다보니까 동화(童話)쯤은 원서 그냥 읽을 수가 있었고 신약성서는 여

           러 번 공부를 한 셈인데 출옥해서 몇 해 되니까 아주 깨끗이 잊어버렸고,

           간혹 영화에서 독일어가 나오면 몇 마디씩 귀익은 발음이 들릴 뿐이니 그

           공부는 완전히 허탕이었다. 1925, 6년경에는 제법 공부한 사람들도 있었
           던 모양인데 나는 그런 의미에서는 헛 징역을 살아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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