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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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들은 내게 와서 상의하고 의견을 묻게 되었었다.



                    수인전옥(囚人典獄)이라고 불리며




                    나 자신은 잡역 한 번도 되어 본 일은 없지마는 어느 담당 간수라도 내

                   의견을 물어서 잡역을 내었고 내 의견을 듣고서야 작업명령을 내렸다. 그
                   것은 내가 잘나고 내 지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내 일을 잘 알고 저

                   희들이 일을 모르는 까닭이었다. 이것은 일반 사회나 어느 단체생활에서

                   도 꼭 같다. 급작히 지위를 차지한 사람보다도 실제의 일을 잘 알고 잘하

                   는 사람이 거기에 주인이 되는 법이다.

                    나는 징역살이가 그리 고되지는 않았지마는 주제넘은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고, 따라서 보철공은 물론 세탁부에 이르기까지 수인들의 피복 관계

                   의 일은 일일이 총찰을 해서 깨끗하게, 든든하게, 보기 좋게 하라고 듣기

                   싫게 잔소리까지 했다. 가령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신의주의 11월이 되

                   면 대개는 영하 추위고 온 천지가 꽁꽁 얼어붙는다. 그래도 웬만해서는
                   수인들에게 솜옷을 내주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별안간 강추위가 덤벼

                   들어서 수인들이 일은 안 하고 손발만 싹싹 문지르고 있게끔 되면 그때

                   는 저희들이 당황하여 솜옷을 내주라고 야단을 치게 된다. 그럴 때 그 솜

                   옷이 준비되지 못했다면 아무리 감옥 당국이 솜옷을 주고 싶어도 못 주게
                   되고 수인들은 떨어야 하고 얼어 죽는 수가 많다. 나도 처음 몇 해에는 이

                   런 꼴을 본 일이 있었다. 그래서 솜옷과 솜이불은 늦어도 11월로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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