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7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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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표를 만나 「자신은 내일 어디선가 출발하여, 유감스럽게도 잠시 이별한
다」고 말하고 또 금후 통신 연락에 대해서 상해 법계 하비로 무림공사(茂
林公司) 이소성 방, 이원숙(홍남표의 별명)으로 하여 행선지도 알리지 않
고 헤어져, 소식을 알 수 없다고 홍남표는 공술하고 있고, 김형선은 당시
집요하게 다시 입선하여 공작을 결의한 것과 같이 상해에서 북평으로 가
서 그곳에서 잠복하던 중 동지 김찬(본도 검거)을 만나 약 20일간 머물고
동인과 함께 9월 12일경 입선하여 그 후 소식이 불명이다.
또 김단야는 쇼와7년 9월 말경 오후 3시경 홍남표를 만나
「오늘까지 담임한 공작은 일응 중지되어 금후 계속 활동할 때는 중국공산
당을 통해서 지령에 따라 시기를 기대한 것 같이 조선의 운동선은 현재 혼
란스럽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될 것으로 「크로
니클」을 전달하라」고 말하여 홍남표도 그를 이해하고 4, 5월 2개월분 크
로니클을 받아서 헤어짐을 고한 이후 전혀 소식을 알 수 없다고 공술하
고 있고, 김단야는 여전히 상해 영국 조계 방면에 잠복하고 있는 것과 같
이 작년 12월 20일 홍남표가 상해 일본총영사관에 구금 중 마침내 서애
순의 명의로 홍남표에게 의복을 차입하는 등을 하는 것은 김단야였다. (서
애순과는 김단야가 정부인 충남 강경색 고명자와 쇼와6년 11월 이후 통
신 연락할 때의 별명)
동지와 일시 교유를 끊고 홍남표는 쇼와7년 11월 중 순경 멸망의 상태에
이르러 상해 한인지부의 부활을 기도하는 오대근, 이무성 등을 훈련시켰
지만 그동안 계속 중국공산당 중앙부에 대해 일본 내지 및 조선 내에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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