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5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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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면 안되기 때문에 공장 회의의 결의, 공대회의에서 행하는 사항 공대회
의는 노동자의 것이 되어야 할 점 등을 선전하기 위하여 공대 뉴스를 발행
하는 것은 어떠한가」라고 제의하여 그를 결의하고 같은날 밤 10시경 산
회하여 그 다음날 고니시에게 「고무 공대 뉴스 제1호」를 인쇄 발행했다.
그 후 계속해서 약 5회에 걸쳐 공대회의를 개최하고 스트라이크 감행에
대해 협의하여 마침내 여름에 들어가 자본가 측에서는 구실로 공장 휴업
을 꾀하는 한편 노동자 자신의 태도가 박약하여 스트라이의 승리에 대한
자신이 희박한 것 및 고무노동자 중 조선인 노동자는 오사카고무노동조
합에 민족적 조합으로 결합되어 있는 관계상 일선노동자의 공동전선 조
직이 곤란하다는 등의 원인으로 실패하게 되었다.
(4) 화학노동조합 공장 분회의 확대, 강화에 대한 활동
앞과 같이 자본가 측의 임금 치하에 대한 스트라이크는 조직할 능력이 없
더라도 공장노동자 층에 대한 일본화학노동조합의 영향은 확충되어 그
영향을 조직화하여 각 공장에서 화학분회를 조직하려고 조몽구, 김문준,
小西 등과 협의하여 이 때 분회의 확대에 구체적 지령을 내놓고 조직운동
을 원만하게 진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견지로 「공대회의의 경험을 분석
하여 스트라이크가 생기지 않은 원인을 명료하게 또 공장에서 확고한 분
회의 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노동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일은 불가능
하다는 뜻을 지도하여 분회 조직운동을 되풀이하라는 지령을 내릴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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