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전시가이드 2023년 03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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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작가의 경우 작가와 작업 사이에 매개자처럼 존재하는 인공지능로봇을 관
람자들이 눈으로 확인하게 각인시켜 주기 때문에 보다 새롭게 여기는 듯하다.
또한 인공지능로봇과의 협업이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기존의 인공지능로
봇이 하이퍼 리얼리즘적인 결과물을 보였다면 여기에서는 너무도 회화적이
고 창의적이어서 더 인간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더 놀랍고 새롭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작가의 생각은 어떠한가.
기존 그림들을 토대로 그림을 만들어내는 법을 학습한 것이 아니라 사진을 토
대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내는 법을 학습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회
화적이라는 표현도 어떤 것이 그림이고 어떤 것이 사진인지 학습되어 왔기에
구분해서 쓰는 표현이라 생각하는데, 이일오는 인간의 기본적인 회화 도구인
붓으로 그리는 방식을 스스로 학습하여 자신만의 그리는 방식을 터득했기에
우리가 보기에 회화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 같다.
인공지능로봇 이일오와 신교명 작가와의 협업 과정으로 이일오의 페인팅 이후
작가가 붓질하는 모습
<XYZ: 공간좌표>(예술의전당 청년작가 전시제작지원공모 선정 전시 시리
즈) 프로그램에는 “결과물은 이일오의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되지만...”에서
고 하는데, 예술과 코딩을 융합하는 것이 아닌, 코딩 능력을 갖춘 예술가가 필 이일오에게 처음 의도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가. 작가가 이일오에게 이름을
요한 세상이다. 신교명 작가는 학부 때 학생 설계 전공으로 키네틱 조형을 전 명명하고 캐릭터를 부여할 때부터 이미 타 인공지능로봇과는 다르게 사고기
공하여 공학과 금속공예를 기반으로 움직임이 있는 조형을 만들었고 졸업 후 능을 지닌 것으로 그 출발점을 다르게 설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는 매칭
작업에 좀 더 복잡한 움직임을 적용하고자 기계공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라 평론가 박서영의 글에서도 “이일오가 원하는 색을 작가가 조색해준다.”는 것
고 한다. 이러한 다양한 공학적 지식 덕분에 현재의 작업이 가능하다고 말한 과도 같은 맥락으로 읽히는데 작가의 생각은 어떠한가.
점으로 미루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배경과 지식을 지닌 미디어 아티
스트 적임자가 아닐까 한다. 이일오에게 처음 사진을 입력하면 어떻게 그려나가고 완성된 결과물은 어떻
게 될지에 대한 계획을 바로 짜고 그와 동일하게 그리게 된다. 따라서 처음 의
사용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언어는 무엇이며 이의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 도라는 것은 이일오의 계획이다. 계획을 짜면서 각각의 붓 스트로크는 어떤 방
은 어떻게 커버하는가. 식으로 그릴지와 어떤 색을 사용할지를 정하게 되면 이일오가 정한 색을 내가
조색해준다. 이일오는 입력된 사진에 가장 적합한 계획을 짜게 되지만 이일오
Python과 Pytorch를 기반으로 직접 제작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인공지 가 인간과 같은 사고기능을 지녔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아직은 인공지능이 생
능을 이용한 디지털 기반의 페인팅 코드는 이미 존재해서 해당 코드를 기반으 각이 있다고 평하기에는 이르다.
로 실제 붓자국을 사용하고 디지털상에서만이 아닌 붓의 크기, 물감의 제한적
색상 등 여러 요건들을 고려하여 현실에서도 페인팅할 수 있게 발전시켰다. 단언하기 어렵겠지만 인공지능로봇을 활용한 미술의 가능성에 대해 말해달
라.
이일오와의 협업 작업은 어느 선에서 종료되는가. 협업 작업에서 마음에 들지
않게 작동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때 어떻게 대처하는가. ChatGPT 등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누구나 원하는 이미지를 생성해낼 수 있게
되었다. 인공지능 그 자체를 그대로 써서 보여주기보다 자신만의 표현에 인
<신교명의 초상> 시리즈에서 앞으로 그릴 사진을 입력할 때 기본적으로는 붓 공지능을 보조적 수단으로 녹여내는 작업이 미술에서의 인공지능 활용 방식
스트로크의 횟수도 함께 입력하지만 나는 이일오가 원하는 색을 섞어주는 보 이 되지 않을까 한다.
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일오가 그리기 시작하면 그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간섭하지 않고 초기에 정한 스트로크까지 계속 그리게 놔두는데, 그
이유는 이일오를 만든 처음의 의도와 달리 내 주관이 강하게 들어가 버리기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익히며 작업을 해나가는 이일오의 활약을 보면서 지
때문이다. <신교명의 초상-4> 시리즈에서는 이일오와 내가 번갈아가면서 나 금 현재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접목을 통해 작가의 전폭적인 도움으
의 초상을 완성시켜 나가는데, 이러한 협업 과정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게 될 로 인공지능로봇과의 협업 기반을 마련하고 있지만, 전승일 감독(The Sci-
경우 내가 수정하기 때문에 그 이전의 초상 시리즈보다 개인적으로 더 내 마 ence Times, 2020)이 말했던 ‘기계 생명체의 창조자’ 테오 얀센(Theo Jan-
음에 드는 결과가 도출된다. 본 시리즈에서는 내가 원하는 시점에서 종료된다. sen/1948-/네덜란드)의 ‘아니마리스 페르치피에레 프리무스’(Animaris Per-
cipiere Primus)처럼 인공지능로봇은 스스로 진화하여 앞으로는 보조적인 협
이일오가 사진을 보고 그리는 방법을 활용한다고 했는데 비구상적인 추상 초 업자가 아닌 능동적인 제작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상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가. 었다. 앞으로 인공지능로봇이 예술 자체에 널리 활용될 것이라면 누구나 사용
가능하도록 오픈 소스로 세상에 공개한 얀센의 홀리 넘버(Holy Numbers)처
이일오에게 붓의 크기와 스트로크 횟수의 제한을 주지 않으면 사진과 거의 동 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손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일하게 그린다. 현재와 같은 비구상적인 그림은 이일오에게 일부러 넓은 붓을 있는 기본 공식을 제안하는 것도 인공지능로봇을 사용하는 미술가의 숙명이
주고 그릴 수 있는 환경에 제한을 두어 나타난 결과이다. 이일오는 주어진 여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술과 공학의 벽은 우리 마음 속에만 존재한다는
건 내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진과 최대한 똑같이 그리려고 한다. 얀센의 말처럼 예술에 인공지능로봇을 과감히 접목하는 이러한 시도는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불확실성 속에서 신교명
특별히 동시대 미술에는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하는 수많은 작업들이 있다. 작가가 짊어진 미래가 무겁다. 그러나 즐겁게 그리고 영리하게 작업을 하는 작
관람자들은 표현에 활용된 인공지능로봇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할 기회가 없 가의 밝은 모습에서 예술의 새로운 방식이 출현하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었어도 하이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작업들이 존재함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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