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전시가이드 2023년 03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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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정선진, Composition, 한지위에 먹, 167x130cm, 2008 ⓒADAGP (우)Pierre Soulages, 회화, Acrylic On Canvas, 142x182 cm, 2018 ⓒADAGP
작품에서는 표면적으로는 현대적 감각을 풍기면서도, 그 이면에는 전통적 요 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꿈이 부단히 현실이 되고 현실이 부단히 꿈이
소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정 작가는 수묵화의 전통적 양식이나 형식을 탈피 되는 경계선상에서 작가의 내면세계는 더욱 깊어 갈 것”이라 평하기도 했다.
하고 보다 자유분방한 표현 방법을 구사하면서도 그러한 자유분방함의 뒤에
는 먹의 농담이나 종이의 여백 그리고 필선 등에 있어서 수묵의 전통과 한국 결론적으로, 정선진 작가는 【AIAM국제앙드레말로협회】 회원 작가들 가운데
적 정취를 은은히 드러내고 있다. 도시 한가운데서, 그녀의 시선은 항상 보는 서도, 그녀의 작업 노트에 "차갑더라도 풀 먹인 옷에 다듬잇살을 올린 것처럼
듯한 건물들을 낮에도 밤에도 항상 새로운 듯이 바라보고 있다. 소란과 잡음과 담채의 반복적인 쌓아 올림이 수묵화로서 깊이 감을 가진다”고 피력할 정도
혼돈 속에서, 그의 고요한 시선은 엄숙하게 단정하면서 잠이 깊이 들지 못하 로 ‘전통적 가치관’이 철저하게 내재된 작가이다. 그렇지만 정선진 작가는 이
는 시간의 흐름을 놓칠까 긴장하고 있다. 소란한 도시 속에서 고독의 절대 감 상과 같은 ‘마인드 영역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미술생태계≫에서 거침
으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다. 무미하고 고독하기보다 은빛 세상으로 가득 채 없이 도약하고 눈부신 결과를 창출해 낸다. 바로 그 시점에서, 기존에 존재했
운 사랑과 소망의 빛으로 가득 찬 모습이 바로 그녀가 꿈꾸는 세계이다. 그러 던 이세상의 모든 리듬을 철저히 깨어버린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한다. 아
니까 그녀에게 있어 은빛은 희망이고 내일이고 행복이고 평안을 의미한다. 그 이러니하게도 이 기간 동안 무려 3년간에 거쳐 정선진 작가의 활동 소식을 더
녀의 그림에는 은빛 소망과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휘황하게 비춘다. 정선진 작 이상 들을 수 없었고 【AIAM국제앙드레말로협회】에서는 여러 차례 그녀의 ‘잠
가의 이러한 작품 경향은, 프랑스의 <추상화 거장>으로 최근에 102세로 별세 정적 부재’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정선진 작가는 행보를 완전히 멈
한 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s)의 ‘검정색 궤적’과 절묘하게 오버랩 된다. 춘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었다고 한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현재
<동양 서예>를 연상케 하는 대담한 검은 획으로 화면을 채워, 전후 프랑스 현 는 【AIAM국제앙드레말로협회】의 존재 명분인 ‘에스프리 누보 프로젝트’에 재
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마크롱 대통령은 “술라주는 합류했다는 점이다. 공성보다 수성이 용이하지 않은 ‘불확실성의 시대’에서는
빛에서 검정을 재 발명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강조하면서 “어둠 너머 그 정상을 탈환하기 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기 마련이다. 필자는 아무쪼록 정
의 그림은 우리가 희망을 그려내는 생생한 은유”라고 트위터로 추모하기까지 선진 작가가 자신이 포진한 【ADAGP 글로벌 저작권자】의 일원으로써, 정적인
했다. 여기서 ‘동양의 검정’으로 상징되는 먹을 사용하는 정선진 작가는 1960 분위기의 화선지 위에다 단순히 하나의 단위로서 검은 사각형, 담채의 변화와
년대를 관통했던 <앵포르멜 미술사조>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붓의 역할이나 그것들의 ‘유한 반복’을 통해 자기 세계를 심화시키는 ‘독백 형
구축한 현대미술의 거장으로써, <앵포르멜 4인방>이었던 이응노와 한스 아 화법’에 안주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니 차라리, 그녀가 절박한 심정으로
르퉁, 피에르 술라주, 자오우키의 예술세계를 반드시 재조명 해볼 필요가 있 하루아침에 고요한 아침으로부터 결사적으로 탈피해 ‘새로운 정신’을 부여잡
다. 재료의 물성을 드러내고 화가의 행위를 강조한 전후 추상미술로, 이들 4명 고 마치 피에르 술라주가 자신의 작품 속에 ‘질서와 무질서’의 공존을 시도했
의 작가는 모두 앵포르멜 미술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구체화 시킴으로써 독 듯이, 회화에 매체를 통한 대조와 요소의 단순성을 극대화시키기를 염원한다.
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바 있다. 그 중에서도 피에르 술라주는 <검정과 빛 더 나아가 그 시각적 강렬함으로 인해 마치 공간의 분할이 질서와 중심을 잡
의 유대감> 만으로도 충분히 정선진 작가와 교감한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 고 있는듯한 착각이 들도록 동・서양 문화 장벽간에 강력한 ‘화해의 바람’을 불
술관 관장은 “관념으로서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연결하는 경계선에서 마치 러 일으키기를 기대할 뿐이다.
연을 띄어 올리면서 느끼는 팽팽한 긴장감을 작가는 조형의 세계를 통해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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