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2021년 01월호 전시가이드
P. 37
(좌) 데이비드 자민, 프랑스(2018), 아크릴, 100 x 100cm ⓒADAGP (우) 아끼는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한 데이비드 자민
재를 달리하면서도 ‘삶과 존재의 이유에 대한 찬미’라는 일관된 주제로, 오늘 리내린 겉모습 속에 희망이 싹트고 있는 내면으로 고달픈 매일을 버텨낼 수
도 현대미술계에서는 보기 드문 “Positive, Best”의 미학을 전달하고 있다. 데 있었던 광대의 모습이리라 추측해본다. 이에 반해, 주제가 무엇이든지 데이비
이비드 자민은 20대 중반에 ≪Art World Gallery≫와 작업을 시작한 이래 화 드 자민의 붓은 항상 동작을 그린다. 마치 연어가 산란을 하기 위해 물살을 거
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어도 50세를 갓 넘긴 지금까지 변함없이 줄곧 의리를 슬러 움직이듯이 새로운 창조를 준비하는 과정에 현란한 몸부림을 동반한다.
지켜왔다. 프랑스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과 미국, 캐나다 등에서 전시제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덤 층을 형성하고 있는 데이비드 자민의 작품과 관련한
안이 줄을 이었다. 일상 속의 행복, 희열, 긍정의 순간을 그만의 감각적인 색채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작년에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는 배우의
로 표현한다. 나무, 아이, 꽃, 바람, 악기, 카페, 광장 등 일상 속 평범한 존재들 새 집에 그의 그림이 걸려 있어서 세인들의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이런 입
을 찬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 그의 작품 속에 유독 시선 소문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자민이 새해 벽두부터 한국을 찾아왔다. 서울 예술
을 사로잡는 부분이 바로 그의 날카로운 형태의 서명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 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내년 1월 5일부터 31일까지 전시를 연다. 『데이비
하다. 바로 베르나르 뷔페의 칼날 같은 글씨체와 닮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베 드 자민: NEW JOURNEY』라는 제목처럼 이번 전시는 여행을 주제로 하고 있
르나르 뷔페는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모든 것이 파괴된 참혹한 전쟁폐 다. 첫째 날 ‘풍경’, 둘째 날 ‘광장’, 셋째 날 ‘호텔’, 마지막 날 ‘일상’ 등으로 꾸몄
허 공포 속에서 살았다. 그래서 삭막하고 쓸쓸한 풍경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다. 3박 4일간의 여행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구성으로 작품 52점을 선보
깡마르게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의 고독과 좌절한 모습을 그려냈다. 그가 그림 인다. 자민은 나무, 아이, 꽃, 바람, 악기, 카페 등 평범하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을
을 그릴 당시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낡은 침대 시트를 찢어 통해 삶의 행복, 희열의 순간을 감각적인 색채로 표현한다. 이런 긍정적 세계
남이 쓰다가 남은 물감으로 겨우겨우 그림을 그렸으며 그가 누릴 수 있었던 관은 현대 미술계에서 드문 것이다. 코로나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코로나 블
최소한의 물감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지치고 외로운 감성을 그려냈다. 왜 루’마저 사회 곳곳으로 확장되어 가는 요즘에 더욱 소중하고 귀한 미학이라고
냐하면 뷔페의 인생 자체가 세상의 절망 속에 핀 꽃이었기 때문이다. 데이비 할 수 있다. 마치 지루하고 답답한 포로수용소에 들려오는 해방의 희망이 담긴
드 자민이 그림에 빠져들도록 동기 부여를 해주었다. 그러나 데이비드 자민이 메시지처럼. 불확실한 ‘백신’에 대한 염원이 이만치나 할지. 이번 전시를 기획
선택한 작품의 경향과 스타일은 그의 정신적 멘토와는 전혀 달랐다. 그럼에 한 정다정 <비아캔버스> 대표는 “자민이 올해 감염 병 사태 속에서도 희망을
도 불구하고 항상 그가 마음속 사부로 삼아왔던 뷔페의 인생은 여러모로 귀감 꿈꾸며 그린 20점을 한국 전시회에서 최초로 공개한다”고 전했다. 미술에 취
이 되어주었다. 작가 데이비드 자민은 일상 속 평범한 존재에 대한 찬미를 일 미를 갖기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언제, 어디서, 무엇을’ 그릴지에 대한 고민에
관된 메시지로 전해 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불행, 절망, 우울, 냉소, 부정의 집착하느라 ‘누가 왜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방황해왔던 우
미학을 그리기는 쉽다. 정작 어려운 것은 그 반대를 그리는 것이다.” 간단하게 리 미술인들에게 자못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확신한다. 세상의 행·불행에 전
두 천재 화가를 비교해 보자. 베르나르 뷔페의 화면 속 오브제들은 거의 움직 혀 영향을 받지 않고 우리 화단에서 강요하다시피 강조하는 ‘학맥-인맥-돈맥’
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경직되어있다. 비록 수시로 소리를 내지르고 움직여 의 먹이사슬 구조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작가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아무
야 하는 ‘광대’를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지된 화면에 가깝다. 마치 겉은 즐 쪼록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속담을 핑계 삼아, 올해에도 스스로를 연마
거우나 속에는 저마다의 슬픔을 가지고 있는 기존의 광대가 아닌, 슬픔이 뿌 하는 ‘새로운 정신’의 붓이 열정적으로 요동치기를 바랄 뿐이다.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