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2021년 01월호 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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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에 빠집니다. 안과의사인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 미국
                                                                    에서의 생업을 접고 유럽 각지를 여행합니다. 여행 중에 한동안
                                                                    머물렀던 피렌체에서 사전트를 낳은 거지요. 사전트는 유년기부
                                                                    터 아마추어 화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유럽 각지의 미술관을
                                                                    순례하며 자연스럽게 화가로서의 소양을 갖춥니다. 그러던 중
                                                                    당시 명망 높은 초상화가 에밀 오귀스트 카롤루스 뒤랑(Emile
                                                                    Auguste Carolus Duran, 1838~1917)의 수제자가 되면서 초상
                                                                    화가의 길을 가게 되지요.

                                                                    <집에서의 닥터 포지>는 사전트가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완성
                                                                    한 초상화입니다. 사전트는 닥터 포지에게 이 그림을 파리 살
                                                                    롱전에 출품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만큼 그림의 완성도에 자신
                                                                    이 있었던 거지요. 하지만 닥터 포지는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보수적인 살롱전에서 바람둥이 의사의 초상화를 곱잖게 볼 게
                                                                    빤하다고 생각한 거지요. 뿐 만 아니라 의사가 새빨간 실내가운
                                                                    을 입고 있는 것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사전트
                                                                    는 <마담X>라는 초상화를 살롱전에 출품했다가 엄청난 혹평
                                                                    을 받습니다. 닥터 포지가 선견지명이 있었던 셈인가요? 그런
                                                                    데 마담X는 도대체 누구인 걸까요? 또 이 그림에 어떤 일이 벌
                                                                    어진 걸까요?

                                                                    시체 같다는 혹평
                                                                    <마담X>는 사전트에게 실패와 성공을 함께 가져다 준 작품입니
                                                                    다. 이 그림의 모델은 비르지니 아멜리 아베뇨 고트로(Virginie
                                                                    Amélie Avegno Gautreau, 1859~1915)라는 매우 긴 이름을 지
                                                                    닌 여인으로, 돈 많은 은행가의 아내입니다. 아름다운 미모로 파
                                                                    리의 사교계에서 ‘마담 고트로’로 불리며 유명세를 누렸지요. 살
                                                                    롱전 출품을 목표로 빼어난 미모의 모델을 찾던 사전트에게 마
                                                                    담 고트로는 닥터 포지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사전트의 아틀리
                                                                    에에서 우연히 본 닥터 포지의 초상화에 마음을 빼앗겼던 마담
                                                                    고트로는, 그 못지않은 훌륭한 초상화를 그려주겠다는 사전트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전트와 마담 고트로 이 두 사람만 결과를 예상하지 못
                                                                    했던 걸까요? 마담 고트로의 초상화가 살롱전에 출품되자마자
                                                                    온갖 혹평이 쏟아집니다. 명망 있는 은행가의 아내가 가슴이 깊
                존 싱어 사전트, <마담 X>, 1884년, 캔버스에 유채, 208.6×109.9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게 패인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 뭔가 부도덕해 보인다는 거
                                                                    지요. 그녀의 지나치게 창백한 피부도 지적을 받습니다. 마치 시
                                                                    체와 다르지 않다나요. 사전트의 초상화를 통해서 자신의 아름
                                                                    다움을 예술적으로 평가받고 싶었던 여인의 꿈은 산산조각나 버
                                                                    립니다. 이 그림의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사전트가 마담 고트로
            사전트는 19세기 말 유럽에서 최고의 초상화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델               의 드레스 오른쪽 어깨걸이를 반쯤 흘러내리게 그린 것입니다.
            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그리는 재주가 탁월했지요. 사전트는 이탈리아 피렌                그 모습이 매춘부와 다를 건 뭐냐는 평단의 질타가 쏟아집니다.
            체에서 태어나 예술의 메카인 프랑스 파리에서 최고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               그림에 예술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온통 관심을 끌기 위
            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수학한 유럽인이지만, 그의 부모는 미국인입       한 선정성만 난무하다는 겁니다.
            니다. 어머니는 사전트가 태어나기 전에 어린 딸을 병으로 잃고 극심한 우울
                                                            이 코너는  칼럼니스트의 의도하는 바를 존중하며 경어체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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