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전시가이드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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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혁 컬럼





















































                       토머스 브록(Thomas Brock, 1847~1922), 조지프 리스터 남작, 대리석, 높이 1974


                                                        이 캄캄합니다. 연극제작자가 크리스마스 연휴에 혼자 텅 빈 작업실에서 언 손
                                                        을 비비고 있던 무하를 소개받게 된 건 ‘신의 뜻’이었던 게 분명합니다. 무하의
        ‘Dr. Love’라 불린 남자(5)                            유니크한 포스터는 단박에 사라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드디어 1895년 새해
                                                        첫날이 밝았고, 파리 시내 곳곳에 무하의 포스터가 걸립니다. 무하의 손끝에서
                                                        변신한 최고의 배우 사라의 모습은 마치 비잔틴제국의 여제 같습니다. 배우의
        박광혁 (내과 전문의)                                    전신을 보여주는 오버사이즈의 긴 포스터도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시도였
                                                        습니다. 반응은 한마디로 폭발적이었습니다. 무하의 포스터를 본 사라의 광팬
                                                        들은 열광했고, <지스몽다>는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합니다. 사라의 다음 공
                                                        연인 <동백아가씨>의 포스터 디자인도 당연히 무하에게 돌아갑니다. 유럽의
        사라 베르나르를 통해 하루아침에 유명해지면서 인생역전한 화가도 있습니          미술계에 ‘알폰스 무하’라는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다. 아르누보 미술의 대가 알폰스 무하(Alphonse Maria Mucha, 1860~1939)
        입니다. 1894년 겨울 사라가 출연하기로 한 연극 <지스몽다(Gismonda)>의   의사의 손
        포스터 제작이 난항에 부닥칩니다. 포스터 시안들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사라        닥터 포지를 소개하는 글에서 너무 주변 사람들 얘기만 한 건 아닌지 모르겠
        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겁니다. 이제 파리의 포스터 일러스트레이터들 어느 누       습니다. 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탓에 글을 쓸 때마다 겪는 딜레마이지요. 고
        구도 더 이상 <지스몽다>의 포스터를 그리려 하지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크       백하건대 제 글의 부족함의 소치이지요. 아무쪼록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리스마스이브에 벌어진 일입니다. 모두 성탄절 휴가를 가기에 바빴지요. 새해       너그러운 양해를 구할 따름입니다.
        첫날 공연이 시작되는데 포스터 없이 모객을 어떻게 할지 연극제작자는 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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