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전시가이드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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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과 컨템포러리 아트




























        종묘 재궁 내부











        긋기단청                                            층의 주택이나 일반 백성의 민가나 모두 백골집이었다. 일반적으로 단청을 하
                                                        는 이유는 비바람이나 병충해로부터 목재의 훼손을 방지하여 건물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궁궐이나 사찰과 같은 건물에는 화려한 색채나 문
        글 : 박일선 (단청산수화 작가)
                                                        양을 장식함으로써 건물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하기도 했다.
                                                        단청을 하지 않는 백골집은 사치를 배격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왕이나 부처와
                                                        같이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더 컸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
                                                        러니하게도 왕이 기거했던 궁궐 안에도 여러 군데 백골집이 남아 있는데 창
        긋기단청이란 바탕칠만 하는 가칠단청 위에 약간의 무늬는 사용하나 대부분         덕궁에는 낙선재와 연경당이 있고, 덕수궁에는 석어당, 경복궁에는 근래 복원
        선만 긋고 끝내는 단청을 말한다. 긋기에는 먹긋기, 먹분긋기, 색긋기가 있다.     한 건청궁 등이 존재한다.
        검은색인 먹으로 긋는 경우를 먹긋기라 하고, 검은색인 먹과 흰색인 분으로
        두 개의 선을 긋는 경우를 먹분긋기라 하며, 검은색과 흰색 대신에 색선을 긋      그럼 긋기단청의 정수를 찾아서 창덕궁 후원의 부용정(芙蓉亭, 보물 제1763
        는 경우를 색긋기라 한다. 긋기단청은 가칠단청과 함께 유교단청으로 대표되        호)으로 가보자.
        는 매우 단정하고 검소한 단청으로서 주로 향교나 사당, 부속건물 등에 많이       부용정은 당초 숙종 33년(1707년)에 택수재라는 정자를 지었던 것을 정조 16
        쓰였다. 곧게 그은 선은 유교에서 군자가 지녀야 할 올바르고 정직한 마음을       년(1792년)에 고쳐 지으면서 연꽃을 뜻하는 부용(芙蓉)이란 이름을 붙이고 바
        표현한 것은 아닐까?                                     꿔 부르게 되었다.
        긋기단청을 하는 까닭은 선만 그려 넣어도 훨씬 가지런해 보이고 정돈된 느        십(十)자형의 독특한 평면 구조를 하고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4칸, 배면 3칸
        낌이 나며 구부러지거나 비뚤어진 목재를 곧게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얻을         에 겹처마의 팔작지붕을 한 정자이다. 그 중 한 칸은 연못에 돌기둥을 세우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위에 걸쳐 지은 수중누각(水中樓閣)으로 연못에 떠 있는 연꽃과 같이 아름
        선을 긋는 곳은 주로 수평으로 된 부재인 대들보나 창방, 도리, 서까래 등 뇌     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에 걸맞게 상록하단(上綠下丹)의 단청 원칙을 충
        록으로 가칠한 부재이고, 석간주로 가칠한 수직으로 된 부재인 기둥이나 동자       실하게 적용하여 처마에는 뇌록을, 기둥에는 석간주를 칠하고 뇌록을 칠한 부
        주 등에는 선을 긋지 않는다. 또한 기둥과 기둥 사이의 넓은 벽면에는 벽긋기      연과 연목에는 먹분선을 긋는 긋기단청을 함으로써 단순하지만 우아하고 단
        라 하여 밋밋하고 단조로운 느낌을 상쇄시키 위해 가장자리 부분을 따라서 사       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각형의 선을 긋고, 모서리 부분에는 간단한 장식 문양을 가미한 귀긋기를 하       궁궐이 갖춰야 하는 격조는 높이고, 지나친 화려함은 피하면서 주변의 자연
        기도 한다.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白骨)집에서는 면접기나 모접기를 하는데       경관과 조화를 이루게 되어 궁궐 정원 건축의 진수를 제대로 느껴 볼 수 있다.
        긋기단청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다.
                                                        또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긋기단청을 찾아 보면 종묘의 재궁이 있다. 왕
        백골집이란 단청을 전혀 하지않은 목조 건물을 지칭하는데 조선 시대에는 궁        과 세자가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국가의 중요한 연례행사인 역대 왕과
        궐이나 사찰 이외에는 단청을 하지 못하게 국법으로 금했기 때문에 양반 계        왕비에 대한 종묘제례를 준비하던 곳이다. 이 곳에는 3채의 건물이 세워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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