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전시가이드 2024년 03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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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연 국립세계문자박물관(김성헌 관장)에서였다. ‘문자로 세
계의 다양한 문화를 만나고 인류·역사와 소통하는 열린 박물관’
을 지향하는 비전 하에 ‘가치 탐구와 확산’, ‘다양성 이해와 문자
생태계 보호’, ‘한글의 가치 공유’, 국가 이미지 높이기’를 미션으
로 추구하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상설 전시 ‘위대한 발명’의
프롤로그로 작가의 <바벨탑>이 자리하고 있다. 스피커 작업은
그동안 <벽>(2009), <타워>(2008, 2009~2011/625cm), <시민
의 목소리>(2017/520cm), <바벨탑>(2018) 등에서 다양한 형
태로 선보인 바 있다. 작가에게 있어 스피커는 다양한 사회문화
적 배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오브제이자 매체로서 그동안 여
러 국가의 언어로 구성된 사운드와 함께 전시되었다. 이번 작
업과 관련하여 작가는 “이곳 박물관의 바벨탑 사운드는 내부와
외부로 구분되는데, 내부는 6개, 외부는 2개로 나뉘어서 들리
도록 하였다. 외부 사운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의 소리로 구
성되며 중간에 초침 소리가 첨가되었다. 내부 사운드의 첫 시
작은 태초의 자연을 생각했고 인간의 단음절 목소리들이 나오
다가 조금씩 문장으로 바뀌게 구성했다. 이후 종교적인 종소리
가 들리다가 내부와 외부의 사운드가 자연의 소리로 합쳐지게
된다”라고 하였다. 기존에도 다양한 사운드를 재생하여 ‘인간의
욕망과 소통의 문제 그리고 언어의 흩어짐으로 야기된 혼란을
표현’(한승미 기자)한 바 있지만, 이와 달리 이번 전시를 위해 새
롭게 제작된 사운드는 배려와 조화를 논하고 있다.
바벨탑으로 대변되는 하늘을 향한 인간의 신전은 일반적으로
혼돈(혼란), 오만, 이산(離散), 비현실성을 의미하지만, 그만큼
베벨탑 내부 목적을 달성하려는 인간의 집결된 의지와 신념의 또 다른 상징
이다. 김승영 작가는 MoMA PS1 국제 레지던시(1999~2000)에
참여하며 바벨탑을 구상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수집하기 시
김승영 작가의 작업 영역은 조각, 설치, 사진, 미디어, 퍼포먼스를 넘나들기에, 작한 스피커들은 제조사가 모두 달랐기에 바벨탑의 의미도 다
전시 때마다 매번 독특함으로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 지금까지 선보인 전 양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바벨탑이라는 레이블로 지워지는 무
시 가운데 감명 깊게 느꼈던 작품들에는 <할렘 종이비행기 프로젝트>(2000), 게 때문에 그동안 <벽>, <타워> 등의 이름으로 대체되기도 했지만, 작가의 바
<기억 1963~2001>(2001), <바다 위의 소풍>(2002), <엘리베이터>(2007), < 벨탑은 단지 위로 치솟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거시성 외에도 미시적로 관찰되
의자>(2011, 2013) 등이 있다. 모두 각기 다른 형식과 방법으로 제작된 독립 는 스피커와 사운드로 인하여 과거의 유적과도 같은 거대 입체물에 생생한 기
적인 작품이지만, 축적된 기억을 소환하며 소통을 논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운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작가는 그동안 스피커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지
지닌다. 공감과 소통이라는 주제의 작가 작품을 찾던 와중에 작가의 <할렘 종 금과는 또 다른 방식, 즉, 공간을 좀 더 장악하는 스펙타클한 바벨탑의 제작도
이비행기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고, 이러한 인연으로 2017년 대구에서 개최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바람은 지금의 바벨탑을 온전히 바벨
된 세계미술교육대회(2017 InSEA World Conference)(2017.8.7.~8.11.)에 안 탑으로 인식되도록 하기 위하여 가능하면 지금보다 더 높이 쌓아올리는 작업
규철, 류재하 작가와 함께 김승영 작가를 전시초대작가로 초청하게 되었는데, 이 시도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혼돈, 조화, 통일, 소통, 공존, 자연, 다양성이라
특별히 마지막 날의 클로징 세레모니에서 대회에 참여한 전 세계 미술교육학 는 수많은 개념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바벨탑 작업에서 전시마다 욕망을, 조
자들과 함께 작가의 <할렘 종이비행기 프로젝트> 퍼포먼스를 재현함으로써 화를, 다양한 문화라는 하나하나의 단편적 개념들을 모두 허용해 왔다면, 이
평화와 안식, 공감대의 형성과 동질성 회복의 메시지를 공유했던 것은 잊히 제는 소통이라는 단 하나를 향해, 다양성이라는 단 하나를 위해 집결하고 집
지 않을 귀한 추억이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미술가의 삶에서 스쳐 지나 적시키는 바벨탑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시키기에는 지금의 박물관
간 사람들의 이름을 보여주는 <기억 1963~2001>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 공간이 제일 적절할 것이다. 프롤로그로 선보인 작업 이후 박물관은 ‘위대한
화 양상을 보여주는 종단 연구처럼 작가의 일생을 통해 분기별로 시도되어도 발명’의 의미를 더욱 공고히 하고 상생을 위해 <바벨탑> 작품을 영구 소장할
좋을 연계성과 지속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매력적이다. 앞으로 필요가 있으며, 작가는 이후 바벨탑을 증폭시켜 문자가 인류의 문명을 이끌
있을 <기억 2001~>에서는 어떤 이름들이 선택되어 작품의 일부로 남겨질지 었듯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할 의무가 있다.
궁금하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소환되어 상기되는 작가의 <엘리베이터> 소통을 향한 염원은 시대를 넘고 세대를 가로질러 현실이자 이상이며 원인이
는 일견 아름답고 아련한 영상으로 인식되지만, 그 누구도 현재의 지위 혹은 자 본질이기 때문이다.
역할에 영원히 머물지 못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에
충격적이다. 이러한 극도의 감명과 공감은 차이를 넘어 화합을 꿈꾸는 <바다 예전에 작가는 정체성, 소통과 관련한 작품들과 연계하여 패션에 대해서도 구
위의 소풍>과 어머니를 향한 작가의 사적 경험을 공적 공감으로 유도하는 < 상 중이라고 했는데, 이 작업은 언제 시작될지도 궁금하다. 현재 김승영 작가
의자>에서도 반복된다. 가 지닌 우주에 대한 관심은 ‘우주로 쏘아올린 바벨탑’으로까지 확대되는 중이
라고 한다. 작가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샘솟는 창의적 아이디어는 보다 견고한
김승영 작가의 스피커 설치 작업을 다시 보게 된 것은 2023년 6월 송도에 문 형태로 눈앞에 등장할 것이다. 우리는 즐겁게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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