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전시가이드 2022년 04월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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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1, 23×26.5㎝, ink on paper, 2010
라는 말에 담긴 개성적 표현 특질은 비구상 화면에서 더 강하게 드러난다. <천 안착하지 않고 진심과 혼을 다해 실험하고 또 실험하는 작가의 예술성과 대
년배산>(1996), <불국설경>(1996), <만월2>(2010)과 같은 작가의 사실적 풍 범함은 작품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삶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소산미술관으로
경에 한껏 마음을 뺏기지만, 사실 이보다 더 눈이 가는 것은 작업실에서 마주 건립이 추진되었으나 결국 무산되고 이후 2015년 경주 엑스포 솔거미술관
한 바로 그 작품같이 거칠면서도 강렬한 호흡으로 에너지를 내뿜으며 전진하 (https://www.gjsam.or.kr)으로 변경되어 개관되었을 때에도 그는 작품 기증
는 그런 미감의 비구상 작품들이다. 저쪽에 유영국 작가가 있고 이쪽에 소산 에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초기 약속보다 더 많이 기증했다고 전해진다. 미
이 있다고 말한다면 지금 나의 이 느낌이 전달될까. 술관 건립이 무산되지 않고 개관된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개관
을 위해 뛰어다녔을 수많은 뜻있는 분들과 단체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
<정관자득(靜觀自得): Insight>(인사아트센터, 2021), <서화(書畵), 조응(調 다. 그분들이 의미 있는 일을 하셨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솔거미술관에 소
應)하다>(솔거미술관, 2020-2021), <원융(圓融): Infinite Interpenetration>( 장된 작가의 작품을 보고 인생 미술가를 찾았다는 이들이 많다. 분명 그의 작
가나아트센터, 2013), <원융무애(圓融無礙)>(솔거미술관, 2021-2022) 등 굵 품은 모두 다 모아놓고 감상해야 전체를 알 수 있는데 이 또한 미술관의 개관
직굵직한 전시 제목들을 통해 작가의 작품 세계가 어떤 의미를 지니며 무엇을 덕분이다. 이곳에서 있었던 2021년 작품 훼손 이슈로 그는 다시 더 유명해졌
지향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지만, 그의 작품에는 풍경과 정물, 사물 다. 이 당시 작가가 언급한 우리 관람문화에 대한 당부는 교육자로서 책임을
과 현상, 실제와 추상, 그림과 글씨의 경계가 없이 서로 넘나들며 늘 공존하고 통감하게 만든다. 관람문화의 정립을 위하여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있어 작가의 작품 경향을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렵다. 작가의 전시를 지속적 할지 고민해볼 일이다.
으로 찾아다니면서 이제는 작가의 작품 경향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
각하는 순간 작가는 지극히 먼 곳으로 다시 떠나버린다. 그럼에도 그가 무엇보 작가는 만년설에 뒤덮인 희말라야 고산지대 골짜기나 타클라마칸 사막과 같
다도 고마운 것은 그림의 소재로 다루기 어려운 우리의 문화재를 과감히 화면 은 오지를 여행했다고 한다. 이제 COVID-19가 잠잠해지면 또 다시 세계 최고
으로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문화재는 그것이 지닌 찬란한 역사가 있 봉으로 달려가서 이를 화폭에 담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니 정말 놀랄 일
기에 아끼고 보호해야 할, 그래서 변형하면 안되는 유산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이다. 그의 계획이 모두 다 실천으로 옮겨져서 그의 꿈을 실제 작품으로 감상
크나, 작가는 이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석함으로써 할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유산 이면에 있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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