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전시가이드 2024년 11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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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이드 쉼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글 : 장소영 (수필가)











































        ‘어? 뭐지?’                                        한 이곳이다. 분위기로 봐서는 K–팝이 낭낭히 흘러나와야 할 것 같은데 80년
        오백 원짜리 동전을 넣는 투입구가 사라졌다. 낯선 기기 앞에서 순간 어리둥       대 음악이라니. 참으로 오묘한 상황이었지만 어느새 편안해 흥얼대며 걸레질
        절 두리번거리다 사무실 쪽으로 향했다. 직원인 청년이 따라오라더니 회원 카       을 뚝딱 끝냈다.
        드 발급요령을 알려준다. 일러주는 대로 신용카드를 넣고 적립식 회원 카드를
        발급해 돌아서는데 한 손에 여전히 쥐고 있는 동전이 무색해 보인다. 오늘따       세차를 마치고 나오려는 데 키오스크 앞에서 잔뜩 고개를 빼고 서성이는 노
        라 유난히 파닥이는 날갯짓으로 두 다리를 쭈욱 뻗친 채 날아오른 은빛 학이       부부가 도움을 청한다.
        목을 늘여 ‘끼룩’ 서글픈 울음소리를 낸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쓰임새가 줄었    “내가 이거를 어찌하는지 몰라서…. 겁나서 세차를 못 하겠네.”
        는데 이곳마저도 거부하니 그 마음이 오죽 할까 싶다.
                                                        저게 곧 닥칠 내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 갑갑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어느 음
        세차를 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설정 탓에 시간제한과 사용이 어설프기만 하        식점에서 키오스크 사용법을 익히던 노인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복지관 직원
        다. 그런대로 여름의 흔적을 고압세차로 시원하게 날려 보내고 널찍한 공간으       들의 도움으로 줄을 서서 돌아가며 기계를 마주하던 불안한 표정들. 음료 하
        로 이동을 했다. 구석구석 광을 내며 물기를 닦아 내는 데 세차장에 울려 퍼지     나, 음식 하나 고르지 못해 지나쳐야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열심이었다.
        는 익숙한 음악이 귀에 와 닿는다. 세찬 물줄기가 주위 소리를 차단해서일까?      실수도 하고 낙심도 하다 자신이 고른 음식을 가리키고 성공을 기뻐하는 모습
        나도 모르게 낯선 문물 앞에 잔뜩 긴장을 했었나? 노래 소리를 못 들은 것 같     을 지켜보며 속으로 파이팅을 외쳤더랬다.
        은데 어느 순간 귀가 열린 것이리라.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태준의 「복덕방」이란 작품이 있다. 일제강점하의
        ‘울고 싶어라. 울고 싶어라 이 마음.’,’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   근대화 물결 속에서 소외된 노인 세대의 빈곤함과 좌절감을 세 노인을 통해
        지만~’ 이어지는 가사들에 그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둘러봐도 소탈했던      보여준다. 그들은 나이는 들었지만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한
        예전 모습은 오간데 없이 세련된 인테리어와 초현대식 세차 기법으로 탈바꿈        노인의 자살로 끝나고 만다. 시대가 달라졌음에도 노인 세대가 겪는 경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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