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전시가이드 2024년 11월 이북용
P. 39

(좌) Mounir Fatmi, Skyline, 800 cm x 365 cm, VHS tapes, 2007 ©ADAGP
                                                              (우) 배재호, Grand Budapest Hotel, 73 x 92cm, acrylic on canvas, 2023 ©ADAGP








            기는, 단연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주조를 이룬 핑크 빛이었다. 이를 배    기 쉬운 2차원 구도의 화폭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경으로 벌어지는 추리소설적 분위기의 ‘코미디 물’이다. 그 핵심 스토리는 세
            계 최고 부호 마담 D 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다녀간 지 얼마 지나지 않     결론적으로, 〔AIAM국제앙드레말로협회〕 회원 작가들 가운데서도 배재호 작
            아 의문의 살인을 당한다. 그녀는 유언을 통해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사과를      가는, 일반적으로 자칫 자기 중심적 ‘이기주의’로 빠지기 쉬운 작가 활동을 겸
            든 소년」 이라는 제목의 명화를 전설적인 호텔 지배인이자 연인 구스타브 앞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고달픈 삶 속에서도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봉사’를 실
            으로 남기면서 벌어지는 사건에서 출발한다. 배재호 작가의 건물 풍경 시리즈       천하는 귀감 그 자체이다. 그도 모자라는지〔AIAM 갤러리〕의 프로젝트를 통해
            는 어른들의 동화처럼 순수하지만 그 안에서도 폭력적인 부분이 추가되었고,        겸손하지만 묵묵히 발전해 가는 작가이다.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시간 대신
            1930년대 파시즘의 고통, 공산주의 시대에 몰락하는 모습, 그리고 그 당시 유    공간을 통해 권력을 행사해 왔다. 혹자는 시공간을 공유한 사람들의 시선이
            럽의 낭만과 예술 등을 재현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배재호 작가와는 대조      모이는 곳에 권력이 발생한다는 이론을 토대로 공간을 분석한다. 이런 권력의
            적으로 건축물을 ‘비극의 상징물’로 포커스를 맞춘 작가가 떠오른다. Mounir    작동 원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은 ‘종교 시설’이다. 초기 종교 건축물인 ≪
            Fatmi(무니르 파트미)는 모로코 출신으로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     괴베클리 테페≫는 최초의 종교적 공간인 동굴의 벽 구조를 모방해 신비감을
            는 작가이다. 그는 다양한 <멀티미디어> 장비 가운데 ‘비디오‘를 소재로 여러     고양했으며, 또 다른 유명 신전 ≪지구라트≫는 높은 계단을 이용해 제사장의
            겹으로 에워싸면서 드로잉, 페인팅, 조각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시키는 설치       위상을 가시화했다. 이후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는 직사각형 평면 구조로
            작업에 몰두해 있다. 특히, 그는 21세기 벽두에 터진 미국의 ‘9•11 사태’때의   큰 규모의 실내를 확보했고, 직사각형의 좁은 변에 위치한 종교 지도자는 시
            개인적 경험에 크게 영향을 받아서 『맨해튼의 구원』 이라는 테마로 다양한 「도     선을 통해 권위를 획득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공간에 모이는 것을 불가능
            시풍경 시리즈」 제작에 몰입한 바 있다. 특히 이 작품들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    하게 해 공간이 상징하는 권력 구조를 약화시켰다. 그리고 권력이 사라진 공
            던 《월드 트레이드 센터 쌍둥이 빌딩》 포함해서 뉴욕시의 ‘스카이 라인’을 묘     간은 재조직의 과정을 겪으며 스스로의 존재 이유에 관한 본질적 질문을 던졌
            사하며 테러의 참상을 은유적으로 고발한다. 맨 처음 발상을 할 무렵에 제작       다. 예컨대, 팬데믹은 종교가 인간 구제라는 본질에 기반함을 상기시켰다. 그
            했던 작품 『맨해튼의 구원 I』은, 당시 테러에 의해 허물어져 가는 건물에서 근    러나 배재호 작가는 인간의 피조물에 불과한 ‘건축물’을 화면의 중심에 우뚝
            무하던 다양한 인텔리 직종의 희생자들을 상징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서적        고정시켜 놓은 대신에, 그 주변에 춤을 추는 인간 군상을 배치하거나 어쩌면
            들을 건물처럼 쌓아 올린 후 조명을 비춰서 그 그림자를 벽에 투사함으로써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낯선 동물들이 공존함으로써 절묘한 분위기의
            마치 ‘망자들의 원혼’을 구원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런 식으로 시리즈     「자연 풍경화」 가 창출되는 ‘조화의 연금술’에 특성화 되어있는 작가임을 확신
            를 이어가던 중 마침내 『맨해튼의 구원 III』에 이르러서는, 스피커를 통해서 흘   케 해준다. 아무쪼록, 배재호 작가 특유의 ‘휴먼-네이처 스토리’가 원숙하게 숙
            러나오는 처참한 비명 소리와 함께 당시의 영상 자료가 담긴 ‘비디오 테이프’      성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우선 그녀 자신이〔ADAGP 글로벌 저작권자〕 임
            뭉치들을 이리저리 헝클어뜨리면서 참상의 극적효과를 최대치로 풀어 헤친          을 자각하고 전세계를 무대로 독창적인 메시지를 던져주었으면 한다. 아울러
            다. 그러나 배재호 작가의「건축물 시리즈」는, 무니르 파트미와는 대척점의 시      서 배재호 작가   스스로 그녀 자신의 『서정적 풍경화』를 ‘새로운 정신’으로 세
            각에서 유쾌한 휴머니즘과 친환경적 요소들을 투영시킨다. 단지 배재호 작가        련되게 디자인함으로써 마침내 견고한 ‘건축물’처럼 글로벌미술시장에서 우
            에게 있어 무척 아쉬운 핸디캡은, 3차원의 건축물을 주제로 다루지만, ‘메타버     뚝 서기를 소망해 본다.
            스’ 영상처럼 흥미진진하고 스펙터클한 전개가 이뤄지기 보다는 자칫 식상하


                                                                                                       37
                                                                                                       37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