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전시가이드 2024년 05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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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1961-),  여성의
                                                                                              강인함에  대한  이
                                                                                              미지에서  착안하
                                                                                              여  신개념  놀이터
                                                                                              를  만드는  토시코
                                                                                              호리우치  맥아담
                                                                                              (Toshiko  Horiu-
                                                                                              chi  MacAdam/일
                                                                                              본/1940-),  작가로
                                                                                              서의  정체성과  오
                                                                                              래된  전통을  결합
                                                                                              시키는  결과물로
                                                                                              서  따뜻한  시선을
                                                                                              지니고  작업하는
                                                                                              이선희  작가  등을
                                                                                              들 수 있다. 뜨개실
                                                                                              이나  와이어가  지
            일상공간_polyester & wire_가변설치(900x900x370cm)_2015                                    닌 매력 중의 하나
                                                            가 바로 공간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작가마다의 특징을 살려 다양한 이미지로
            보라리 작가는 다루는 매체나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이 작품마다 특이할 정도        구성할 수 있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로 다양하다. 작품의 주제는 대부분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공공미술 작업(‘솜
            사탕 코끼리’, 2021)에서는 공공성을 지향하며 공동체와의 소통에 중점을 둔     ‘뜨개질 설치미술로 그리는 시간의 축적’(김우리, 2014), ‘작가는 오늘도 마음
            다. 뜨개실로 구성해내는 노동집약적 제작 과정에 탐닉하는 듯하다가도 돌연        을 뜨개질합니다’(신보슬, 2020), ‘현존재로써의 자리-시간을 묶은 삶의 자국
            미디어 설치(‘난외(欄外)’, 김준서×보라리, 2022: ‘난외(欄外)_2개의 길’, 김준서  으로서의 조각’(홍경한, 2022), ‘춤추는 선들의 향연’(한의정, 2023), ‘선과 공간,
            ×보라리, 2023)를 선보인다. 3D 펜으로 공간 속에 입체(‘검은 탑’, 2022)를 쌓  시간을 만나 차원의 화폭이 되다’(박미란, 2023) 등 작가의 전시 서문에서 발
            아가다가 캔버스에 유채로 정성스럽게 평면 페인팅(‘파낸 자리’, 2023)에 집중   견할 수 있는 공통적인 요소는 시공간 속에서 뜨개실과 와이어로 만들어지는
            하기도 한다. 작가의 다양한 시도 중 공간에서의 매력적인 구성미가 돋보이        선과 드로잉, 여기에 내재하여 얹어지는 사적인 기억과 내면에 잔존하는 불
            는 설치 작품으로 ‘bora201310’(2013)과 ‘일상 공간’(2015) 두 작품을 선택하  안 등 작가만의 독특한 심상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뜨개실로 만
            여 이번 컬럼에 게재하게 되었는데, 사용된 재료는 유사하지만 누적된 선들        든 작품의 경우 주어진 공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쌓아나가는 과정 전체가 포
            로 형성된 이미지와 상징성은 두 작품에서 사뭇 다르게 전달되고 있다. 작가       괄되기 때문에 이를 ‘시간의 축적’ 혹은 ‘공간에 놓인 조각’으로의 인식도 가능
            가 즐겨 사용하는 뜨개실과 와이어는 ‘한정된 공간’(2021)에 와서는 서로의 영   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시공간에서 힘을 발휘하는 입체화된 선과 면, 그
            역을 구획하고 풀어내는 역할이 서로 교차하여 나타나게 되는데, 이렇듯 작        리고 여기에 투영된 작가의 상상력이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품마다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게 작동하여 동일하지 않은 느낌을
            자아내는 점이 흥미롭다. 이것이 바로 유사성을 제압하는 작가만의 다양성이        무릇 작가에게 있어 작업의 과정과 결과에는 작가로서의 자기 자신이 전적으
            라고 할 수 있다.                                      로 투영되겠지만, 특별히 4차원 공간을 다루는 설치 작업의 경우 작가 자신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고한 신념과 더불어 공간을 읽어내는 힘이 동시에 받쳐주
            붉은 실 때문에 시오타 치하루(塩田千春/일본/1972-)와 비교하여 언급되기      지 않는다면 자신의 꿈을 펼치기도 전에 설치물은 소심한 대형 입체물로 전락
            도 한다. 시오타 치하루도 다양한 작업을 하는 작가 중 한 명이지만, 혈관을 연    해 버리고 만다. 따라서 설치를 시도하는 작가는 작가로서 지녀야 하는 구체
            상시키는 붉은 실 작품은 작가가 병마를 겪으며 통증처럼 느끼게 된 삶과 죽       적이고 확실한 작가 정신이 설치 장소로서의 공간을 마주하면서 폭발해야 한
            음에 대한 고뇌, 사회 속에서 맺는 다양한 관계들, 불확실성 등에 대한 작가 내    다. 이런 점에서 보라리 작가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다듬어 가면서 세상에 대
            면의 성찰이 녹아 있다. 이외에도 가늘고 연약한 실이지만 조용히 공간을 아       한 따뜻한 시선과 특유의 성실함으로 무장하여 공간에 조형미 가득한 드로잉
            우르며 둘러싸는 작업을 하는 아키코 이케우치(池内晶子/일본/1967-), 언어,    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대담하지만 폭력적이지 않고 강하지만 유연함을 잃지
            기억, 해체, 소멸, 추방을 주제로 작업하는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  않는, 공간을 마주하는 강한 힘을 지닌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전시 기간 중임에
            칠레/1948-), 공예의 깊은 사색적 잠재력을 강조하여 소박한 재료를 영적인     도 끊임없이 로봇을 정비하며 스토리를 만들어 나갔던 권병준 작가(2024년 1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소냐 용 제임스(Sonya Yong James/미국/1971-), 삶과   월호 이주연 컬럼)처럼, 보라리 작가도 전시 기간 중 뜨개질을 이어 나가면서
            죽음, 생명과 인연 등 인간 삶의 궤적을 따라 붉은 실을 끝까지 놓지 않는 박     면밀한 탐색과 관찰로 공간을 재단해 나간다. 작가는 완성 작품으로 관객과의
            혜원 작가도 있다. 이 외에도 뜨개실로 작업하는 작가로는 차가운 도시를 털       소통을 구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증식하는 긴 작업 과정을 공유함으로
            실로 따뜻하게 감싸는 얀보밍(yarnbombing)의 아가타 올렉(Agata Olek/폴  써 관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미술을 새롭게 바라보도
            란드/1978-), 사물이 지닌 고유의 형태와 기능, 재료의 성질과 색상을 세심    록 만들어준다. 특별히 삶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하게 관찰하고 분석하여 재탄생시키는 아누 투오미넨(Anu Tuominen/핀란     통해 미술이 항상 우리 옆에 있음을 작가는 깨닫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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