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전시가이드 2024년 05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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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Marie Denis, La Psyché, oscllant mirror for landscape, stainless steel, 120cm diameter, 2006 ⓒADA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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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 중국의 철학가인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잠에서 깨어나고 나니,       잃어버린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을 상상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프시케』를 구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상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그 영혼들이 탑승했던 비행기가 추락하는 그 ‘짧았
            그 경계가 모호하여 이를 두고 ‘호접지몽’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화를 오마       던 순간’에 느닷없이 나비로 <물화>되면서 ‘영원의 시간’으로 전환시키고 싶
            주한 시리즈 작품이다. 장자가 나비가 된 현상을 두고 <물화, Reification>라  었던 것은 아닐지. 그래서인지 몰라도 필자는 그때 분명히 보았다. 반질반질
            고 하며, 사회의 구성원인 현대인도 이 작품의 나비처럼 물화가 되었다고 치       빛나는 스테인글라스 거울안에 투영 반사되며 춤추듯이 자유롭게 날아가는
            환하여 시작한 작품이다. 나비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보통 ‘자유로운       한 쌍의 나비를. 나비하면 제일 먼저 ‘자유로운 존재’임을 떠올리는 송시연 작
            존재’일 것이다. 또한 나비는 생명이라는 동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이 작업에      가라면, 과연 그곳에서 무엇을 볼 것인지 궁금해진다.
            서의 나비는 앞선 나비와는 다르게 천과 프릴, 쥬얼리 등으로 구성해 화려함,
            외관적인 미에 중점을 둔다. 나비의 몸통을 해골로 나타내었는데, 해골은 인       결론적으로, 〔AIAM국제앙드레말로협회〕 회원 작가들 가운데서도 송시연 작
            생을 살아가면서 투영되는 우리 그 자체. 즉 마치 속 빈 강정과 같은 ‘허무함’    가는 고대 중국의 <도교사상>의 정수이자 ‘노장철학’으로 상징되는 동양적 관
            을 지닌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현대인이 이따금씩 허영심에 빠져 ‘삶의      념세계에서 머무르지 않고, 19세기와 20세기의 서양철학과 사회비판에서 빠
            본질’을 놓치는 성향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나의 정체성에 집중하       질 수 없는 한 고전적 개념, 즉 게오르크 루카치의 <물화(物化)> 개념을 ‘시각
            는 것이 아닌 겉치레나 외관만을 중요시하는 세태의 흐름이 과연 옳은 것인        미술’로 화합시킴으로써 오늘날의 사회적 현실과 학문적 수준에 맞춰 새롭게
            지에 대해 자문하는 작품이다. 그 작품 시리즈 외에도 전공인 <한국화>를 살      해석하고 있는 독보적인 작가임에 틀림없다. 물론 마리 드니는 ‘평면’에 국한
            려서 ‘동양의 미’에 천착함에 따라, 특히 ‘전통‘을 되살리는 작업에 초점을 맞추   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입체 및 공간’까지 아우르는 점에서 송 작가보다 한 수
            고 있다. 최근에는 ‘전통 장신구’에서 차용한 나비, 일월오봉도, 옛 설화 등 <고  위이지만, ‘인생의 무상함’까지 먼저 꿰뚫어 본 송시연 작가 또한 나름대로 평
            전 문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에 중점적으로 매달리는 중이다. <한국       가해 줄만하다. 왜냐하면, 송시연 작가가 발견한 ‘인생의 무상함’이 만약 <흑
            화>는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준비 과정이 오래 걸리며 그       사병과 30년전쟁>이 휩쓸었던 역사적 시기와 비교해 전혀 무관하지 않다면,
            속에서 차분하게 그림을 맞이하는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서양화와 다르게 수       16~17세기의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에서 유행했던 「정물화」에 스며든 정
            정이 힘든 게 단점일 수 있겠지만, 거기서 나오는 ‘예외성’이 도리어 작품을 부    신적 교감인 ‘Vanitas’와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라틴어 형용사
            각시켜주기 때문이다. 아울러서 <한국화>의 형태에서 보여주는 매력을 널리        Vanus가 어원으로써 '공허', '헛됨', 또는 '가치 없음' 등 전통적인 기독교인들
            알리는 것이 그녀의 인생 목표 중 하나라서 재료에 대한 공부도 도전 중이다.      의 관점으로 세속적인 물건과 일시적이고 무가치한 것을 추구하는 트렌드를
            자, 이쯤에서 필자는 <물화, Reification>에 대한 송시연 작가의 ‘내면적 시각’  의미한다. 이보다 더 범위를 확장시키면, 전형적 동양의 불교 교리인 「무념무
            을 살펴보았으니, 동·서양 문화권에서 인지하는 보편적인 관점을 집중 분석해       상」즉, 망념과 망상이 없는 무심의 상태 와도 그 궤를 같이한다. 마리 드니와
            보고자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사랑의 신 에로스의 연인『프시케』의 진      마찬가지로〔ADAGP 글로벌 저작권자〕의 에이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
            정한 모습이 저승에 갔다가 살아 돌아왔다는 의미에서 마치 고치에서 ‘부활하       보다 송시면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 속에 반영시킨 <물화> 라는 ‘정체성’
            는 영혼’을 상징하듯 나비로 그려진다. 이렇듯 나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       을 지속적으로 표출해야 한다. 아무쪼록, 송시연 작가가 자신이 터득한 ‘새로
            로부터 ‘영혼’이자 ‘영물’로 취급되어왔다. 공교롭게도, 필자가 파리에 체류하     운 정신’을 추구하는 <선각자>인 동시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 작가>
            던 시절에 한창 떠오르는 ‘청년작가’로 눈 여겨 보던 프랑스의 여류 작가 마리     로써 변화해가는 세상을 향해 꿋꿋하게 도전해가기 바란다. 궁극적으로 그 초
            드니(Marie Denis)의 설치 작품『프시케』가 문득 떠오른다. 2000년대 초 파리   기 과정에서 전세계의 ‘청춘 세대’를 향해, 비록 경외감으로 포장된『성화』가 아
            시 외곽에 위치한 Gonesse에 떨어져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던 「콩코드 여객     닌 휴머니즘이 잔뜩 배어있는 『세속화』 일지라도, 자유로우면서도 동적인 에
            기」추락 사고를 추념하는 퍼포먼스였다. 수년 후 사고가 벌어졌던 같은 장소       너지를 마음껏 발산시킬 것을 조언한다.
            에서 어렴풋이 피어 오던 영감 속에 마리 드니는 어쩌면, 사고 당시에 목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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