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전시가이드 2021년 07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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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숙, 농가월령가 유월령, 120x133cm                         박무숙, 상춘곡 중에서, 110x108cm




                                  ‘한지에 누빌레라’라는 주제는 마음에서 오는 그림과 글씨의 교유(交遊)란 의미에서
                                          조병국 작가와 박무숙 작가의 콜라보로부터 시작되었다.
                             귀거래사(歸去來辭) 글씨와 50호의 한지 그림이 교환되고, 한동안 이어진 문자-이미지 사이의 감동은
                    서로 문답(問答)하는 우정의 맥락에서 동백 그림과 글씨를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畫 畫中有詩)’로 논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에 깔려 있는 작품들은 물성의 모사(摹寫)를 가로지른 정신, 이른바 닥종이와      에 올려낸 탁월함은 수많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황촉규를 수백 번 거쳐 만들어낸 한지의 지혜로움을 반영한 결과인 것이다.        고(故) 벽강 조희구 선생은 너무 맑아서 투명하기까지 한 궁체의 정수에 대해
            한지의 은은한 멋을 통해 스며드는 과정은 작가의 “한지풍경을 한지인상으         “붓이 가야 할 목표를 정했으면 거침없이 가야지, 왜 망설이는가?”를 반문토록
            로” 전이시킨다. 동백 이후에 보여질 새로운 ‘한지모노크롬’으로의 전이과정       함으로써 오늘의 기법을 완성시킨 속필(速筆)의 진수와 만나도록 하였다. 실
            은 “스밈, 수묵의 모더니즘”이라고 평할 만하다. 손의 노동을 통한 장인정신      제 박무숙의 글씨는 어려운 궁체 정자를 펜글씨 쓰듯 한다는 평을 듣는데, 벽
            을 전통과 현대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낸 흔적들은 손톱이 없어지고 지문이 사       강 선생의 사후 새로운 경지의 ‘꽃길미학’을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라질 정도의 노동작업만으로도 가늠할 만하다. 반복 속에서 이루어진 명상과        이후 대한민국미술대전(이하 국전)의 초대작가가 되기 위한 십 여 년의 도전,
            치유의 행위들은 콜라보 전시 속에서 새로운 자기변혁을 준비 중이다. 작가        국전에서 7번의 한글 정자(正字)로 입선 이후에야 특선에 이르렀고 초대작가
            는 스밈의 의미에 대해 “한국의 자연이나 주변의 일상에 내재한 진실함을 그       인증을 받은 후에야 궁체의 수려함을 위한 연구가 깊어질 수 있었다. 경쟁 속
            에 걸 맞는 기법으로 사실감 있게 표현해내고, 진(眞)과 경(景)에 대한 깊이를    에서 끌어 올린 자신만의 서체는 관동별곡이나 고문체 같은 ‘옛것들의 정체성
            인식함으로써 ‘스밈’을 체득하는 작업”이라고 평한다. 인상주의자들의 색조와       속에서 기본기를 통한 자기해석’으로부터 탄생했다. 고문체를 임서(臨書)하는
            동양미학의 진수를 결합한 색채미학의 실험들은 정(精)과 감(感)의 정반합을       까닭은 글씨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작가는 다양한 배움을
            통해 이루어낸 ‘그림이 아닌 실존의지’라고 할 수 있다.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종이와 기법을 숨김없이 공개한다. 궁중의 혹독한
                                                            수련 과정을 견뎌내고 최고의 궁체를 빚어내신 서기 이씨의 마음을 간직한 채,
            한글 빚기의 정수, 꽃길 박무숙의 소요유(逍遙遊)                     고유의 먹빛(담묵;淡墨)을 순수한 닥종이(한지)에 녹여낸 결과, 한글은 박무숙
                                                            작가를 통해 글로벌 아트로의 변신을 준비 중이다.
            한글 빚기, 도공의 손을 떠나 하나의 명작이 탄생하기까지 불 속에서 시간을
            견뎌낸 도자는 수없는 연습작을 즈려밟은 이후에야 ‘고운 빛깔’을 머금는다.       이렇듯 박무숙과 조병국의 콜라보 전시는 형식과 내용을 마음으로 공감하는
            박무숙 작가가 본인의 작품을 ‘한글을 빚는 과정’에 대입한다는 것은 수많은       과정이다. 조병국 작가는 “조화로움을 찾기 위한 전시”로, 박무숙 작가는 “각
            연습과 인고 속에서 겨우 만족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자의 작업이 어우러지게 하는 전시”라고 평한다. 다름 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한글의 직관적 아름다움을 찾아온 길, 꽃에 빗댄 한지와의 만남은 ‘꽃길’이란      상생(相生)의 전시, 이것이 동년배의 두 작가가 만들어낸 어우러짐이자 자신
            작가의 호(號)와 잘 어우러진다. 엷은 담묵의 정수를 다루기 어려운 얇은 한지     의 작품을 객관화 하는 세련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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