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2019년04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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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컬럼
새벽이 되면 켜지는 것 80×100cm acrylic on canvas 2019
사 박의 <가벼운 무리들>과 >에서의 투명하지만 저채도의 색감은 묘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작품을
대하면 대할수록 작품 속 인물들이 있는 곳이 어디이고 왜 그곳에 있으며 무
엇을 하고 있는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는 이유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
<새벽이 되면 커지는 것> 하는 인물들의 불안정하고 불편한 모습들에서 보는 이들이 애써 숨겨놓은 자
아를 들켜버린 것 같은 당혹감과 깊은 짠함이 더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주연(경인교육대학교 교수)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나는 작업을 통해 실체가 있지만 미미하고 희미한
무언가를 기록하고, 현실이 과분한 생산물 속에 텅 빈 부산물로 채워져 있음
을 보여주고자 한다. 나의 역할은 어디선가 눅눅한 몸떼기를 이끌고 숨어 있는
집을 뒤로 하고 어떤 사람이 걸어간다. 움직이는 것은 분명한데 어디로 향하는 습기를 찾아다니는 존재들이 배회하는 광경을 포착하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지는 알 수 없다. 우울한 상념에 잠긴 것일까 아니면 울고 싶은 것일까. 그 표
정도 읽기 어렵다. 이 인물은 소파에 걸터앉아있던 사람(<양복> 2017)일 수 <가벼운 무리들>(2019. 3. 5 ~ 3. 29 이목화랑) 주제의 개인전 작품들에는 인
도, 몸에 튜브를 끼고 어정쩡하게 서 있던 사람(<튜브> 2017)일 수도, 아무렇 물 중심의 기존 작업과 달리 도넛, 곰, 줄넘기, 풍선개, 초코비, 물총새, 생일케
게나 누워 있던 사람(<아무런 풍경> 2017)일 수도, 이상한 털옷을 입은 사람 익, 생일초 등 인물이 아닌 오브제도 왕창 등장하는데, 현재 이들은 서로의 존
(<미미> 2018)일 수도 있다.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읽 재를 제각각 외치고 있다. 아직 연계되지 않은 이 오브제들은 작가가 기억 속
을 수 없는 표정에 불편한 자세로 소속감 없이 공간 속을 떠도는 모습인데, 이 에 숨겨놓았다가 이제 서서히 꺼내놓으려고 하는 또 다른 존재의 등장을 예고
들은 작가의 페르소나(persona)이다. 하는 것일까. 이들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궁금하다. 그래서 늘 사 박 작가도,
이 작가의 작품도 궁금하다.
흐드러진 붓질, 어스름하지만 시간대를 알 수 없는, <새벽이 되면 켜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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