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전시가이드 2022년 01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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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3, 22×28cm, Mixed media on mylar          2021-29, 22×28cm, Mixed media on mylar




                                                            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또한 감상자들은 순수추상일 경우에만 연상 작용을 동
                                                            원하여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구상, 반추상에 상관없이 작품에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한 작동기제로 연상 작용을 활용하기도 한다. 예전 한지에 그
                                                            린 목탄 정물 드로잉 展과 관련하여 이계선 통인화랑 관장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순간순간의 기억과 경험을 일깨워 준다”(이코노믹리뷰, 2020)고 말한
                                                            것도 이와 관련된다. “신선함과 재미, 깊은 서정성을 전달하는” 그의 정물 드
                                                            로잉과 달리 2인전에서의 추상 그림은 실행하기 어려운 논리적 초월성을 주
                                                            장하는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한지 위의 짙은 목탄이 지
                                                            닌 재료의 깊은 느낌, 마일러 필름(mylar film) 위로 흡수되지 않고 지나가는
                                                            붓질의 예민함과 물감의 물성은 작가가 조형성에 얼마나 탐닉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그러나 일단 작품이 완성되면 여기에서 완전히 벗어나려
                                                            는 의지가 이러한 연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와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비평가나 감상자도 그렇지만 작가도 늘 강조하는 것이 신선함, 젊음, 깨어있
                                  2021-19, 22×28cm, Mixed media on mylar  는 정신이다. 그의 이런 특성은 1999년 실험적인 예술을 지원하는 비영리 전
                                                            시공간인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2008년 청년 작가가 온전히 작가
                                                            로 발돋움할 수 있는 플랫폼을 위해 마련된 아시아프(ASYAAF)의 시작점에 늘
                                                            설원기 작가가 있었다는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전통을 존중하나 안주
            품, 곁에 두고 싶은 작품이라는데, 이 말에는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좋     하지 않고 늘 새로운 길을 열어가려는 그 행보에 작가 자신과 작가의 작품뿐
            은 작품’, ‘작가가 보이는 작품’, ‘서재에 걸어두고 싶은 작품’이 모두 동일한 비  만 아니라 우리의 미술계를 짊어질 젊은 미술인들도 있다. 덕성여자대학교 교
            중으로 같은 의미일 필요는 없겠지만 작가에게서만큼은 이것이 동급의 의미         무처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로 작용하는 것 같다.                                    행정 업무까지 거쳐온 작가는 미술가이자 행정가, 또한 좋은 교육자이기도 하
                                                            다. 작가는 학생의 입장에서 보는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에 학생 스스로 질문
            설원기 작가는 연상되는 모든 것을 배제하는 것을 목표로 작업한다는데, 이는       을 던지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스스로
            작가의 표현 의도와 감상자의 시선 모두를 포괄한다. 미술 감상에서 관람자의       답을 찾아 나가는 제자가 많아서 작가의 컬렉션에 다수의 제자들의 훌륭한 작
            선입견이나 선경험, 미술과 작가에 대한 지식으로 인한 간섭을 일절 배제하는       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자로서도 학생들이 스스로에게 질문하
            것이 전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그는 작품 자체로서 작가를 알아봤으면        게끔 만들지만 그는 자기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답을 찾고자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경험과 교육 때문에 미와 조형성 등에       한다. 작가는 작업에서 진정으로 낭만적이고 싶은데 스스로는 이성적이기 때
            대한 관념은 원천적으로 배제가 어렵고 그중에서도 색은 이미 작가의 선택을        문에 영원히 낭만을 꿈꾸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거치기 때문에 배제가 더 어려운데, 이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흰색과 검정으로       평생의 질문이겠거니 싶다.
            색을 제한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이 선택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
            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으며, 같은 의미로 작품에 갑     설원기 작가는 <그림이라는 그릇>(2021)이라는 제목의 작가노트를 보여줬
            자기 돌출되어 등장하는 원이나 사각형이 너무도 이질적이라 연상에서 자유         다. 한없이 낭만을 바라고 이를 그림이라는 그릇에 담고 싶은데 어렵다고 쓰
            롭기 때문에 그래서 낭만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유사 연상이나      여 있다. 그런데 그것이 작가의 작품이 지닌, 그리고 작가가 지닌 매력이라고
            연속 연상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겠지만, 인간은 개인 각자의 상상력을 동원      말한다면 오해할까. 낭만을 꿈꾸는 논리적 냉철성, 바로 이것이 작가의 개성
            해서라도 시각 이미지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이건 개인적이고 사         이고 작품이 지닌 특성이다. 작가가 보이는 그림, 그가 그리는 그림에 그 자신
            적인 정보로 이미지화될 수밖에 없어서 극단의 훈련을 통하지 않고서는 여기        이 너무도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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