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전시가이드 2021년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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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숲2102. 142×98cm, Mixed media with Korean paper on canvas, 2021



            을 수 없었던 작가의 길, 그는 작가정보가 없다면 나이와 태생을 가늠하기 어      의 매력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곳이 없는 희생하는 자작나무의 쓰임과도 연관
            려울 정도로 열정이 대단하다. 전통한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는 방식은 도       된다. 시린 겨울을 견디고 봄을 여는 자작나무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은 작가
            구를 통해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벗어내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이미지의        가 평생 이어온 작품을 향한 열정과 닮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손과 한지의 시
            본질을 자연과 생명에서 찾아온 작가에게 자작나무와 동백은 본인의 인생을         간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관계의 하모니’를 중시하는 작가의 작화관(作畵觀)
            담은 일종의 자기고백 같은 대상이다.                            과 연결된다. 자작나무를 그리는 작가의 관심은 감상자에게 어떻게 위로와 치
                                                            유를 통한 ‘긍정의 에너지’를 줄 것인가에 있다. 지문이 닳아 없어질 만큼 한지
            한지 모노크롬, 삶에서 체득한 추상 시리즈                         에 투영한 한지의 층들은 새로운 층과 콜라보 되면서 깊이 있는 레이어를 남
            한지 모노크롬 시리즈는 동백과 자작나무 같은 대상자체가 갖는 인상을 작품        긴다. 희미하면서도 누적된 한지와의 만남 속에는 조병국 작가가 그려내고자
            의 본질 안에 끌어안는다. 작업 구도의 단순화와 바탕의 유사색이 한지의 은은      하는 자연심상의 깊은 원형이 담겨 있다.
            한 멋 안에 스며드는 과정인 것이다. “한지풍경에서 한지인상”으로 전이된 과
            정의 합일이 바로 ‘한지모노크롬’인 셈이다. 이른바 “스밈, 수묵의 모더니즘은     꽃으로 가득한 향취의 인상, <동백시리즈>
            손의 노동을 통한 장인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로스코, 윤형근, 김환기    <동백시리즈>는 전면을 꽃으로만 창출한 그림이다. 붉음과 푸름, 꽃잎은 나
            등의 모노크롬 화가들이 추구해온 방식을 자신만의 개성화로 확장시켜 전통         전칠기의 단순화된 컨셉 속에서, 전통건축의 문창살과 세월의 흔적을 담은 선
            과 현대를 수묵·옻칠·종이 등으로 실험한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작업이 아       운사 돌담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을 반영하듯, 농촌풍
            닌 손이 짖이길 정도의 노동 강도, 손톱이 없어지고 지문이 사라질 정도로 노      경이 중심이 된 동심의 기억들을 동백과 중첩시켜 표현한 것이다. 본질을 보
            동한 연후에야 생성되는 결과물인 것이다. 지치지 않는 반복 속에서 이루어진       되 단순화로 나아가는 점은 동양화가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한 마음을 그려내
            명상과 치유의 과정들, 이는 앞서 설명한 발묵과 만난 한지와의 교유(交遊)과      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동백그림에서 어딘지 모르는 따스함이 느껴지는
            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말 그대로 한지의 물성을 살린 단순화 과정이라고 할       것은 수묵을 하면서 찾았던 단순화시키는 훈련 때문이다. 동백시리즈에는 구
            수 있다. 작가는 ‘스며듦’이라는 의미에 대해 “한국의 자연이나 주변의 일상에     상에서 추상으로의 이행과정이 담겨있다. 나무의 켜처럼 촘촘하고 견고하게
            내재한 진실함을 그에 걸 맞는 기법으로 사실감 있게 표현해낸 것으로, 진경·      내재된 깊이감이 한지에 스며들어 새로운 미감을 만드는 것이다. 동백에 대
            실경에 대한 깊이를 인식함으로써 가치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다       한 사유로 피어난 작가의 새로운 서사는 동백이 단순한 향기로움으로 다가오
            름 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조병국 작가의 다양한 한지미학은 각박한 현대인들        는 꽃이 아님을 시사한다. 조병국 작가는 작품을 주체와 만나는 새로운 관계
            에게 공존과 치유의 메시지를 선사한다.                           의 장으로서 표현한다. 동백의 꽃말은 절조와 애타는 사랑, 신중함, 청렴결백
                                                            함, 겸손 등을 나타낸다. 마음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피고 지는 동백에 대한 인
            자연과 상생하는 한지의 인상, <자작나무 시리즈>                     식은 서정성을 뛰어넘어 자연의 질서와 변화 속에서 피고 지는 꽃을 통한 우
            풍경 속에 사유를 담는 조병국 작가는 묵묵히 한지 작업을 이어왔다. 동양화       리네 삶의 다층적 의미들을 철학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철학
            대가들의 기법을 대부분 섭렵했지만, 정작 본인의 시그니처는 자신이 여행했        적 성찰에 기반으로, 동백이 가진 진부한 상징성을 뛰어넘어 삶의 본질에 대
            던 소소한 자연풍경을 담백하게 그려낸 것이다. 그 가운데 자작나무는 존재 그      한 관조와 탐구를 한지로 승화한다.
            자체로 휴식과 치유를 안겨 주었다.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어우러진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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