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2020년 12월 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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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현 컬럼

































        로즈 와일리, ER AND ET, 2011년작, 182×343cm,런던 Union Gallery 소장 ⓒADAGP










         에스프리누보
                                                        펼치고 있으며 작품들은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뉴욕에
        새로운 정신                                          서 모스크바에 이르기까지 여러 도시의 갤러리에서 단독 전시회를 열었다. 로
                                                        즈 와일리는 영화, 잡지, 대중에게 알려진 사진 등을 참고하고 영감을 받아서
                                                        그림을 그린다. 일단 작품의 주제를 보자. 작가이기 이전에 일반인으로서 그
                                                        녀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대상을 다룬다. 대부분 보수적인 경향을 띠게 마련
        글 : 김구현 (AIAM 미술 경영연구소 대표)
                                                        인 연령층임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은커녕, 쿠엔틴 타란티노와 베르너 헤어조
                                                        크 류의 기이하고 폭력적인 영화의 ‘찐팬’이다. 그도 모자라 영화에서의 인상
                                                        적인 장면이 그림의 단골 모티프가 되는 식이다. 대상의 클로업과 와이드 앵
                                                        글을 번갈아 오가고 대상을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것 역시 영화와 만화에서 받
        그녀는 글로벌 현대미술계에서 핫하게 떠오르는 일명 ‘고령의 슈퍼 스타’이다.      은 영향 때문이다. 그림 위 텍스트가 자막이나 말 풍선처럼 기능하는 건 자연
        통상적으로 90세를 면전에 둔 작가라면, 물론 모두는 아니겠지만, ‘원로’라는     스러운 일이다. 『킬빌 (2003)』같은 영화나, 니콜 키드먼, 축구선수, 엘리자베스
        타이틀을 앞세우며 은근히 뒷전에서 잔소리를 즐기기 십상이다. 게다가 남들        1세 여왕 등 유명인들을 주제 삼아 그린다. 그는 역사 속 인물을 그릴 때도 현
        입장에서 볼 경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이자 아직까지       재에 알려진 인물의 얼굴로 대체하여 요즘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게 그
        는 신진 작가이기에, 오히려 이를 약점으로 착각하거나 부담감으로 인해 작품       린다. 많은 셀럽들에게도 인기 있는 화가인 로즈 와일리의 그림은 모델 나오
        경향이 노숙하고 차분해야 할 듯싶지만, 그녀는 딱 잘라서 “나는 직접적으로       미 캠벨이 래퍼 퍼프 대디에게 선물로 주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좀더 구체
        표현하는 걸 좋아하지, 고상한 척 하는 건 질색”이라고 못을 박는다. 바야흐로     적으로 파고 들어보자. 그녀의 대표작인『ER & ET (2011)』는 엘리자베스 1세
        코로나 3차 팬데믹이 지구촌을 냉각시키는 와중에서도, 도리어 글로벌 미술        의 초상화인 『Rainbow Portrait (c. 1600~1602)』의 화려한 망토에서 영감을
        생태계에 불을 지핀 이 ‘대세 녀’의 이름은 로즈 와일리이다.              얻었다는데, 막상 그림 안의 주인공은 하얀 수영복만 달랑 입었다. 여인을 둘
                                                        러싼 눈과 귀는 반복되어 패턴마냥 화려해 보인다. 여왕 엘리자베스 1세와 배
        로즈 와일리는 1934년 영국 켄트에서 태어났다. 21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     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이니셜을 딴 이 그림은 대중에게 노출됐던 그들의 삶
        혼과 육아에 전념하면서 하던 미술공부를 마치지 못했던 로즈 와일리는 47세       을 이야기하고 있다. 겉모양만 봐서는 역사적으로 화려한 삶을 살아갔던 대
        의 나이가 되어서야 ≪Royal College of Art≫에서 미술 석사 학위를 받는다.   표적인 두 여인의 실상은, 뭇 남성들의 ‘관음증’ 섞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결국
        그 후로도 큰 명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가 76세 생일을 몇 달 앞둔 시기에 <가    수영복만 걸친 여인에 불과하다는 다소 도발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이
        디언>지에서 ‘영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 한 명으로 불리면서 그의 작품은      아닌지. 또한 전 총리 토니 블레어가 비판한 영국 국민의 올바르지 못한 식습
        인정받기 시작한다. 현재 우리 나이로 87세인 그녀는 매우 왕성하게 활동을       관이 주제인 『Choco Leibnitz (2006)』도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가능세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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