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2020년 12월 전시가이드
P. 41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포즈를 취한 로즈 와일리







            론’을 펼쳤던 철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를 제목을 붙여서 평소 본인이 좋
            아하는 초콜릿 비스킷을 자신의 입과 함께 커다랗게 그려 넣었다. 유쾌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증명하듯 그녀의 개인전이 세계 최대 규모
            한 순간 심각해질 수도 있는 ‘와일리식 위트’를 구사한다. 이쯤 되면 표현 방식    로 한국을 찾아왔다. 그의 개인전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
            은 투박하고 거칠어도 작품이 부단한 관찰력과 사색을 동반하고 있음을 알 수       전』이 2021년 3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열릴 예
            있다. 틀에 박힌 것을 진부하지 않게 바라보고자 하는 작가의 성향과도 일관       정이다. 로즈 와일리는 “나에게 캔버스란 완벽한 작품을 완성해 내야 하는 도
            된다. 로즈 와일리는 여전히 영국 남동부에 자리잡은 자신의 고향 켄트에 거       구가 아닌 자유를 표현하는 놀이터”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그녀만의 색
            주하며 17세기 오두막에서 작업하고 있다. 미술 대학을 졸업했지만 가정을 꾸      깔이 담긴 유화, 드로잉, 설치미술, 조각 등 15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이 나왔다.
            리느라 손을 놓았다가 45세에 다시 런던 왕립미술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자신       특히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VIP룸(Tate Members Room)에 있던 작품
            의 꿈을 실현하는데 있어 남다른 의지와 끈기가 돋보인다. 로즈 와일리는 영       들뿐만 아니라, 토트넘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 선수를 그린 작품들을 국내 최
            국에서 가장 성실한 작가다. 보통 서너 장의 캔버스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앉     초로 공개한 것이다. 이쯤에서 그녀의 어록을 음미해 보자. "집요하게 버티다
            아 그림을 그린다. 그녀의 엉덩이가 캔버스 위를 크게 대여섯 번 움직이고 나      보면 진력이 날 수 있다. 그렇지만 중단했던 경험이 있으면 그러지 않아도 된
            면, 스스로도 더는 캔버스 위에서 쭈그려 앉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자녀들     다. 하나를 했다면 다른 것으로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이러한 그녀만의 관점
            이 다 커버린 1980년대 이래 그녀는 매일 그렇게 그림을 그렸고, 수백 점에 이   은 작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뭔가를 했다가 그게 끔찍해 보이면 (프레
            르는 작품을 집 안 창고에 빼곡히 쌓아둔 채 매달 그 그림을 걸 곳을 찾아 다녔    임에서 캔버스를) 벗겨내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어쩌면, 이 시대가 로즈 와
            다고 할 정도다. 영국 가디언지는 2010년 76세 고령의 와일리를 ‘가장 뜨거운   일리의 회화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 안에 작가의 뚝심이 드러나기 때문이 아닌
            신진 작가’에 선정했다. 2011년 <폴 햄린 재단상(Paul Hamlyn Foundation   지. 유난히도 우리 화단에는 이런저런 명목으로 ‘원로’ 자리만 차지하려는 작
            Award)>을 받았다. 2013년 ≪테이트 브리튼≫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영     가들이 많다. 그러나 과연 그분들 가운데 그녀만큼 집요하게 자신의 목표를
            국 주요 작가 반열에 올랐으며, 2014년 <존 무어 상'(John Moores Painting   관철시키고자 노력하는 ‘뚝심 미술인’이 몇 명이나 될지. 누구나 야무진 계획
            Prize)>을, 2015년에는 <찰스 월러스톤 상'(Charles Wollaston Award)>을   을 세우며 한 해를 시작하지만 막상 해가 저무는 시점에 이르면 속절없는 심
            수상하기도 했다. 2017년 런던 ≪서펀타인 미술관≫ 개인전으로 대중적 사랑      정으로 또 새해를 기다리기 마련이다. 그런 부질없는 세월의 되풀이 속에서나
            을 얻었고, 2018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문화계 공로상>을 받는 등 수많은     마, 아무쪼록 끊임없이 도전하는 가운데 자신만의 자유로운 놀이터에서 ‘새로
            ‘수상 퍼레이드’를 벌인다.                                 운 정신’을 발견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39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