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전시가이드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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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자 作, Serenity and Dynamism,  90 ×65cm, cotton, acrylic on canvas, 2010    태릉 정자각 머리초 낙은동










            름다움은 버선코의 곡선이 있어야 완성된다고 할 정도로 치마 밑으로 보일 듯       을 입증해 준다. ‘버선발로 달려 나간다’, ‘말 태우고 버선 깁는다’, ‘남의 발에
            말 듯 드러나는 새하얀 버선코는 여성의 자태를 한층 더 우아하고 아름답게        버선 신긴다’ 등등....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버선이 사라져 가듯 버선의 아름다
            만들어준다. 버선코가 주는 곡선의 미학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고 한국인만         움도 거의 사라져 간다.
            창조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우리나라 전통 한옥 지붕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도 버선코 같은 날렵한 곡선이란 말이 쓰인다.                  그래서 버선을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도 이젠 거의 없다. 그나마 한국 여인의
            그래서일까 세계적으로 탁월함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성형 수술에서도 요          애틋함을 품고 있는 ‘버선’시리즈를 꾸준히 작업하는 제정자(1938~  ) 작가가
            즘 버선코 모양으로 코를 성형 수술하려는 여성이 늘고 있다고 한다.           있어 정말 다행스럽다. 버선 작업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알아보면 '버선은 하
                                                            나의 우주라고 생각한다. 발은 우리 신체의 작은 우주인데 그것을 지탱하는
            이밖에 버선본은 옛 풍습에 잡귀를 쫓고 액막이용으로도 쓰였다. 그 예로 장       것이 버선이다. 버선은 한국 여성들의 삶이 깃들어져 있고 애환이 함축돼 있
            맛이 변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장독에 버선본을 거꾸로 붙이는 풍습        기에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가 열 손가락 안 아픈 자식 없다는데,
            이 있었다. 거꾸로 붙인 버선본이 땅에서 올라오는 나쁜 기운이 장독으로 들       버선은 곱든 미웁든 모든 발가락을 하나로 다 감싼다. 그런 것처럼 버선은 신
            어가는 것을 막는 뚜껑 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돌 때      는다는 기능적인 것을 뛰어넘어 엄청나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우리에게 주
            는 문지방에 버선을 내걸기도 하였으며, 액막이용으로 버선 모양으로 한지를        는 교훈이 많다. 그 옛날 할머니, 어머니들은 밤이 되면 버선을 만들고 꿰매면
            잘라 만든 부적이 널리 유행하기도 했었다.                         서 수만 가지 생각을 했을 테고 완성됐을 때 그 희열은 여성이 아니면 못 느
            버선의 마지막 명맥은 그리 길지 못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전통 한복이       낄 거다.'라고 말한다.
            양복에 밀려나면서 버선도 마찬가지로 양말에 밀려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전통 예능을 하는 사람들이나 전통 한복점 등을 통해서 버선의 명맥이       버선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단청에서 버선 형태의 낙은동
            겨우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간혹 아기 돌잔치 때 타래버선을 신기는 이들이       은 오히려 쇠퇴하지 않고 더 많이 그려지고 있다. 또한 단청에는 낙은동과 같
            있지만 이마저도 정말 보기 힘들다. 버선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어쩌다 명      은 여러 가지 회화적 요소들과 우리 선조들의 예술적 감성이 깊숙이 녹아 살
            절 때나 신거나 볼 수 있는 역사의 유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아 숨 쉰다.
            그럼에도 버선이란 말이 들어간 속담과 관용구는 남아 우리가 버선의 민족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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