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전시가이드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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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Simon Hantaï, Aquarelle, 50 x 45cm, watercolour on canvas, 1971 ⓒADAGP (우)강명순, 기억의정원, 116.7 x 91cm, acrylic on canvas, 2022 ⓒADAGP
묵, 향기를 배우려 한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꽃이 보여주지 않는 것을 보이게 는다. 최선을 다한 화면에서 성과처럼 얻어내는 결과물은 ‘제물’과도 같이 신
하는, 움직임을 느끼게 하고 움트고, 봉우리 맺고, 펼쳐지면서 피어나는, 그리 성하다. 접고 구기거나 실로 촘촘히 묶어 매듭을 만든 캔버스나 종이에 물감
고 시드는 순간순간을 모두 보아낼 수 있게 한다. 그것은 하나의 움직임, 운동, 을 칠하는데, 주름 잡힌 방향과 방법에 따라 독특하게 퍼져 나오는 ‘패턴’을 작
생성, 이미지의 끊임없는 변형으로 생겨나는 생성 그 자체다. 한 번도 한 순간 품으로 환생시킨다.
도 정지한 적이 없이 생성하고 움직이는 세계에 대한 시선, 그것은 단순히 꽃
이라는 소재에 대한 집착이나 손에 익은 대상이 가지는 친근함이나 익숙함이 결론적으로 강명순 작가의 ‘정체성’을 정의 내리자면, 〔AIAM국제앙드레말로
아니다. 도리어 익숙해서 지나치기에 언제나 낯선 것으로서 다가오는 감성의 협회〕회원 작가들 가운데서도 ‘종이’의 물성을 해체시키는 반복 작업을 통해
온도를 보여주는 소재다. 그의 꽃은 꽃의 연약함과 강인함이라는 두 이미지를 서 거행되는 <해부 의식의 여 사제>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
동시에 표현한다. 잎과 줄기라는 대비적 묘사와 표현에서도 드러나지만 한 사 다. 이와 대조적으로 시몬 한타이가 작품을 마주하는 건 물감이 마른 뒤 천을
물이 가진 두 개의 얼굴, 그 속성을 하나의 세계로, 그리고 세계를 유동하는 이 펼치고 나서인데. 바로 ‘우연’이 만들어낸 장면을 뒤늦게 보게 되는 거다. 그의
미지로서 읽게 하고 집중케 하는, 말로 드러낼 수 없는 말을 보여준다. 이쯤에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수채화’(Aquarelle·1971)』 역시 그렇게 제작한 작품 중
서, 일단 강명순 작가에 대한 ‘추적’을 멈추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종이’의 물성 하나이다. 아무리 우연이라 해도 그 결과를 이끌어낸 연구와 실험까지 우연이
에 한없이 매료되어, 마치 캔버스 천을 ‘종이’ 다루듯이 갖고 놀다가 모름지기 라 할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 한타이와 강명순 작가 사이에는 미지
자타가 공인하는 ‘중독의 경지’에 이른 글로벌 거장을 소개한다. 헝가리 출신 를 탐구하는 과정을 향한 제스처"라는 공감대가 엄연히 존재한다. 특히 강명
의 프랑스 화가인 시몬 한타이(1922~2008)는 1922년 부다페스트 인근의 비 순 작가의 경우, 다양한 재질의 종이를 붓 삼아 화판에 전통 춤사위 같은 정중
아토르바기에서 태어났다. 8살 때 급성 전염병인 디프테리아에 걸려 일시적 동의 이미지를 포착해낸다. 어쩌면 그녀는 <드로잉>을 회화 조각의 밑그림
으로 눈이 멀었는데, 이 경험은 그가 전통에 얽매이지 않은 ‘폴딩(Folding)’ 페 정도로 여기겠지만, 직접 창작한 전시작을 둘러보는 가운데 자신의 작업 태도
인팅 테크닉을 만들어내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1942년 부다페스트 순수 와 예술 세계가 반영된 ‘날것 그대로’ 드로잉의 또 다른 깊이를 절감할 수 있으
미술대학(Budapest School of Fine Art)을 입학한 그는 졸업 후 1948년 프랑 리라 확신한다. 강명순 작가가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향한 탐구 과정의 흔적
스 파리로 이주한 이후로 <초현실주의, Surrealism> 화파에 가입하여 활동 인 ‘제스처’ 하나마다 작가의 예술 세계, 작품에 대한 마음가짐과 노력이 담겨
하였다. 특히,『Pliage(접기)-Collage(붙이기)-Frottage(문지르기)』 등 독창적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강명순 작가가 지속적으로 꾸준히 정진해 간다면, 언젠
인 기법을 실험한 그는 프랑스 초현실주의적 경향을 비롯하여 1950년대 중 가는〔AIAM국제앙드레말로협회〕라는 작가 공동체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지 않
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조르주 마티유(Georges Mathieu)의 작업 을까 조심스레 전망해본다. 아무쪼록 〔ADAGP 글로벌 저작권자〕의 일원으로
을 대하면서 ‘방법으로서의 플리아주’로 전향,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써, 강명순 작가 고유의 ‘제스처’를 통해 어루만져진 ‘새로운 정신’이 무한 다수
시몬 한타이는 20세기 후반 세계 추상의 대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하지만 여 관자들의 마음 속에 스며드는 동시에 그녀의 실험적 접근방법과 창의적인 생
느 추상화가와는 좀 다르다. 의미를 구도로 삼고 스토리를 색으로 올리는, 다 각들을 속속들이 엿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른 이들과는 다른 장면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작가는 ‘우연’을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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