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전시가이드 2021년 11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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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현 컬럼
2017년 10월 16일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강연 당시 리암 길릭의 설치작품 ⓒADAGP
에스프리누보 전시라는 점과 함께, 지난 30년간 리암 길릭이 진전시켜 왔던 주요 주제들을
한데 모았다는 데에서 의미를 더한다. 특히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와 ≪
새로운 정신 구겐하임미술관≫에 출품됐던 작품들도 대거 전시되었던 지라, 기대이상의
효과를 안겨주었다. 당시 한국을 찾았던 리암 길릭의 평소 작업 관을 들어본
다. "관객이 100명이면 100개의 해석이 있으면 좋겠다." 세계적 현대미술 작
글 : 김구현 (AIAM 미술 경영연구소 대표) 가의 전시인만큼 관객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어 지레 겁먹
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미술을, 리암 길릭을 알지 못해도 자신이 느낀 바
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 그의 작품인 것이다. 리암 길릭은 답을 정해놓지 않고,
리암 길릭(Liam Gillick)은 아일랜드계의 영국 일즈버리 출생으로, 1987년 ≪ 작품을 위해 소재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예
골드스미스대≫를 졸업했다. 작가로 데뷔했을 무렵에는 당대의 악동들로 유 술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의 작품에 쓰이는 재료들도 우리들의 일상 곳곳
명한 데미안 허스트, 사라 루카스, 안젤라 블로흐 그리고 헨리 본드 등과 함께 에 있는 것들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화려한 불빛과 피아노 소리가 반긴다.
1990년대 초기 <yBa의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다가 1996년 어느 날 갑자 조명 사용을 최대한으로 줄여 어두운 전시장을 소리와 빛으로 가득 채웠다.
기 『Discussion Island』를 선보이며 <개념 미술>로의 전환을 선언한다. 이후 실제 영국에서 실내 조명으로 많이 쓰인다는 조명이 입구 천장에서 파도와 같
부터 지금까지는 오히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리크리트 티라와니트 등과 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은은한 빛을 발산하고 '인간의 행복을 계산하는 공식'
함께 ‘관계미학’의 컨텍스트 속에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이 초록, 빨강의 네온사인으로 표현돼 공간을 메운다. 언뜻 외국 도시의 밤 풍
경을 보는 듯도 하다. 작가는 실제로 이번 전시 자체를 하나의 추상 작품이라
리암 길릭은 현대미술사에서 ‘관계 미학’의 이론적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 생각하고 '도시가 꾸는 꿈'이라는 주제 아래 전시관을 꾸몄다. 1층 가운데에는
다. 사회 현상의 분석과 미학적 접근을 바탕으로 인간, 환경, 삶, 예술 사이 관 하나의 큐브 공간이 있다. 작품을 설치하는 벽이 되기도 하고 하나의 작품이
계를 새롭게 규정하는 것이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이미 만들어진’ 세계 되기도 하는 이 큐브는 천장이 없고 앞쪽 벽은 유리 등 그 어느 것으로도 가려
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시스템을 비평하는 예술적 방법을 실험해오고 있 져 있지 않다. 제도권 밖의 건축을 통해 새로운 상상들이 생겨나도록 하는 공
다. 여기서, 리암 길릭의 ‘작품 세계’를 면밀히 분석해보자. 참고로 올해 초 <제 간이다. 1층 큐브 안에는 건축물의 중심 재료가 아닌 부차적 재료로 만든 작
1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으로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리암 길릭 품이 걸려있기도 하다. 2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큐브 안에 있는 피아노를 발
의 『워크 라이프 이펙트』를 역추적해보았다. 아시아 미술관에서 열리는 최초 견할 수 있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소리의 주인공이다. 피아노 위로는 검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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