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전시가이드 2021년 11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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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혁 컬럼
토마스 에킨스, <에그뉴 박사의 클리닉>, 1889년, 캔버스에 유채, 214.2×300.1cm, 필라델피아 미술관
병마와 싸우는 의료인들 렘브란트의 <튈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에서는 실제 해부학 수업 장면 을 그
수술실 풍경 렸다기보다는, 튈프 박사와 그 제자들의 집단 초상화를 그리기 위한 설정 장
면을 그린 것입니다. 이런 그림을 제르벡스는 사실주의 화가답게 실제 해부
실습에 앞서 교수와 참관한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을 담은 그림 으로 승화시
켰습니다.
박광혁 (내과 전문의)
렘브란트의 그림과는 확연히 달라진 그림으로 인해 외과의사들의 수술 그림
의 새로운 경지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수술 장면의 새로운 시도 는 사람
렘브란트의 정적인 배치 대신 그는 복잡한 몸짓과 시선으로 주인 공의 태도와 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고, 그 이후로 다른 많은 화가들도 이런 외 과 수술 장
움직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의도적으로 중심을 벗어난 구성을 하여 역동 면을 사실적으로 화폭에 담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 화가로는 미국의 토마
적으로 느껴지도록 배치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가장 최 근의 의료 과학적 진 스 에킨스Thomas Eakins(1844~1916)가 있습니다. 에킨스의 <애 그뉴 박사
보를 표시하기 위해 흰색 천 위에 놓인 수술 도구 세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의 클리닉The Agnew Clinic>에서는 수술이 급한 절개 상황인데도 라이브 중
사실 이러한 장치 구도는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참신한 근대성과 희망의 메 계 형식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의사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에
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이지요. 따라 의학계 지도자들은 초상화 그 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렘브란
트 같은 정적인 초상화가 아니 라 현장감 넘치는 그림을 선호하게 된 것입니
그러나 가장 중요한 차이는 그동안은 이런 수술 장면 그림이라고 하더 라도 다. <애그뉴 박사의 클리닉> 에서 에킨스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에
수술이 주제가 아닌, 수술하는 사람들 즉 의사들의 집단 초상화 수준 이었습 서 근무하다 은퇴한 외과 교수인 데이비드 애그뉴 박사를 멋지게 그려 냈습니
니다. 그런데 제르벡스는 이것을 과감히 탈피하여 수술하는 사람 들이 멋있 다. 그림 속에서 환자 는 옷을 벗은 채 호흡 마스크를 통해 투여되는 전신 마
게 보이게 하는 초상화가 아니라, 의사들의 실제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 취제로 인해 의식이 없지요. 밝은 수술용 조명은 가운데 6명의 인물에 스포트
제 수술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에 큰 의미가 부여 되는 것입니다. 라이트를 맞추고 있습니다. 왼쪽에 메스를 들고 있지만 수술에서 제외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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