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전시가이드 2021년 11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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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암 길릭, 전쟁 놀이, 페인팅 MDF, 2016년 ⓒADAGP
이 내리는데 계속해서 연주되고 있는 이 단순한 멜로디는 『그란돌라 빌라 모 제아트페어(Kiaf SEOUL 2021)》가 성황리에 폐막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레나(Grandola Vila Morena)』이다. 1974년 군사정부에 대항하는 포르투갈 ‘ 으로 인해 한 해를 거르다 보니, 올해에는 ‘리벤지 심리’까지 작용했는지 기
카네이션 혁명’의 신호탄이 된 곡이다. 광주의 역사적 맥락과 비슷하다는 점 대했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
에서 리암 길릭이 광주에 보내는 『헌정 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리암 길릭은 년 오프라인 행사가 취소되어 생긴 공백을 2년만에 회복하는 모양이다. 2019
전시관뿐만 아니라 미술관 1층 전체를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1층 로비 유리 년에 비해 7%이상 증가한 8만8,000여명의 관람객이 방문했고, 5일간 650억
벽에는 여러 텍스트들이 나열돼 있다. 수많은 업무용어에 쌓여 일과 쉼의 균형 원의 판매액을 기록했다. 개막 이전부터 갤러리들마다 입도선매, 사전 예약이
이 깨져가는 세태를 표현한 패러디다. 프린터가 오작동해 쏟아낸 듯한 단어들 상당 부분 진행됐고, 매출액 1000억원대까지 내다본다는 말들이 나올 정도였
이 언뜻 현대적인 ‘시(詩)’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비에 설치된 알록달록한 테이 다. 무엇보다 미술 상인들과 컬렉터의 기대감이 컸지만, 정작 그 속내를 분석
블과 스툴 역시 작품이다. 미술관의 부차적 요소라 할 수 있는 벤치를 작품으 해보면 기형적인 단면들이 드러난다. 특히 젊은 <MZ세대 컬렉터들>이 미술
로 만든 것인데, 관람객들이 실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S자형 구조로 되어 품을 주식과 부동산을 대체하는 투자재로 지목하고 시장에 뛰어들면서, 사실
있어 막상 마주보고 앉을 수는 없다. 미술관 내 외부를 연결하는 로비부터 안 상 가격 등락을 거듭하는 공산품 취급을 받지 않았나 심히 우려되고 있다. 어
과 바깥, 일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 스타일을 넌지시 보여주는 셈이다. 물전 생선이나 가전제품처럼 즉석에서 골라 계산하고 인수하는 패턴이 등장
중심 요소가 아닌 주변적 요소가 경험과 기억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개념이 했다. 인기 작가 작품의 경우 미리 선금을 걸고 예약한 작품을 다른 구매자가
스며있는 작품이다. 미술관에서의 기억이, 대단한 작품이 아닌 앉아서 보내는 전액을 치르고 가져가버리는 ‘막무가내 식 구매’도 일어났다. 더군다나 내년부
시간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북 라운지에는 『마음의 키오스크』라는 작품 터는 글로벌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와 협업으로 공동 진행된다. 단독으
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유리 벽에 시트지로 작업된 이 작품은 키오스크( 로 치러지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이기에 어쩌면 당연지사겠지만, 이미 국내에
임시판매대)를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마주친다는 점에서 매개의 공간으로 해 진출했거나 신규 출품한 유수의 <외국 화랑들>까지 가세해 ‘축제의 모닥불’
석한다. 시원하게 펼쳐진 유리 벽으로 중외공원의 풍경과 미술관의 내부를 매 에 기름마저 들이부은 셈이다. 바로 이 대열에, 지난 10월 한남동으로 둥지를
개하는 북 라운지의 공간성에서 영감을 얻었다. 궁극적으로 리암 길릭의 ‘정 옮긴 ≪갤러리 바톤≫이 ‘리암 길릭’의 작품을 들고나와 성과를 거둔 것이다.
체성’은 2009년에는 영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대표작 뿐만 아니라, 무대를 옮겨 그의 개인전 『There Should Be Fresh Springs...(
가로 선정됨으로써 타고난 ‘문화의 보편성’을 지닌 작가이다. ≪취리히 쿤스트 새로운 샘들이 솟아나야 한다)』이 11월 23일까지 열린다. 이러한 ‘연속 행보’
할레(2008)≫, ≪시카고 현대미술관(2009)≫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통해 이 는 결코 우연이 반복되어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리라. 문득, 내년에는 훨씬 더
러한 장점을 파악할 수 있다. 현재 뉴욕에 거주 중이며 콜럼비아 대학(1997~) 진화해 있을 리암 길릭의 ‘작품 경쟁력’과 보다 확장된 ‘브랜드 인지도’를 상상
및 바드 컬리지 큐레이터학 센터(2008~)에서 강의하고 있다. 해본다. 준비된 자만이 낚아챈 기회를 즐길 수 있다. 아무쪼록 국내미술 시장
의 외형적인 변화가 ‘새로운 정신’에 의해 진화함으로써 <글로벌 미술생태계
지난 10월 17일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국내 최대 미술품 장터인 《한국국 >에 자랑스레 자리매김 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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