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2019년02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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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컬럼


















        테이트 브리튼(런던)                                     뉴휘트니미술관(뉴욕 첼시)


        빠르게 성장한                                         도로시 밀러는 평생 좋은 작가들을 발굴해서 의미있는 전시들을 올렸던 명성
                                                        있는 큐레이터이다. 미국 미술계에서 매우 힘있는 사람이었고 일반 콜렉터들
                                                        이 감히 가질 수 없는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
        미국 미술시장의                                        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작품을 사 모은 사람은 아니었다.


        숨은 공로자들
                                                        심을 자국 미술가들에게 돌려놓은 것은 역량있는 작가들과 그들을 알아보고
                                                        새로운 담론을 생성될 정도의 수준높은 전시를 기획해서 궁극적으로 미국미
         정은경((EK아트갤러리 대표)
                                                        술의 질적 성장을 주도해나간 큐레이터들의 힘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의 국립현대미술관이 모마 이상의 전시를 할 수 있어야 한국미술의 국제화
                                                        도 이룰 수 있다. 큐레이터들에게 전적인 재량을 줘야하고 미술관 운영기금
        오늘날 세계미술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미국, 그 중심에 있는 뉴욕의 화랑과 경       도 더 많이 줘야 전시 퀄리티를 올릴 수 있는데 정치, 행정하시는 분들은 너
        매회사들의 역사는 놀랍게도 50-60년 정도 밖에 안 되었다. 1950년대 뉴욕    무 인색하게 돈을 주면서 최고를 보여주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게다가 간섭
        에는 30개 갤러리도 채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맨해튼에만 600여개의 갤러리       이나 외압도 심하다.
        가 있다! 세계대전에 개입해서 정치적, 경제적인 패권을 장악한 미국은 돈만
        많은 돼지라는 유럽 사람들의 무시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미국정부가 내민 카        영국의 미술만을 보여주는 테이트 브리튼이 있고 미국의 미술만을 보여주는
        드는 예술산업을 육성하는 것이었다. 마침 준비된 일군의 작가들-추상표현주        휘트니미술관이 있다, 영국미술도 자국의 콜렉터들에게 인정받고 작품이 활
        의라고 불리우는-을 전략적으로 밀었다.                           발하게 소비된 지가 그리 오래 된 것은 아니다. 18세기까지도 섬나라 영국은
                                                        미술에 있어서 대륙(프랑스, 이태리, 네델란드, 스페인 등)에 비해 주도적이지
        마중물을 뜬 핵심적인 인물은 딜러들(1차 시장인 화랑이나 2차 시장인 경매       못 했다가 빅토리아 여왕 때 경제적, 정치적인 황금기를 누리면서 라파엘전파
        회사)이 아니라 모마(MoMA)의 관장과 전시담당 큐레이터라고 할 수 있다. 당    같은 가장 영국적인 미술그룹이 등장하면서 당시 새로운 미술 구매자로 등장
        시 모마의 관장이었던 알프레드 바는 1958-59년까지 유럽과는 다른 엄청난      한 부르주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좋은 미술학교도 생기고 좋은
        사이즈의 캔버스화로 유럽전시투어를 강행했다. 전시명은 <새로운 미국회화         작가들도 양상되고 상업화랑도 팽창하면서 19-20세기에 오면 경매시장뿐만
        The new American Painting>이고 이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 전설적인 큐레  아니라 다양한 미술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이터의 이름은 도로시 밀러이다. 도로시 밀러는 평생 좋은 작가들을 발굴해서
        의미있는 전시들을 올렸던 명성있는 큐레이터이다. 미국 미술계에서 매우 힘        영국과 미국이 지나온 발자취를 살펴보면 자국의 작가들을 지원하고 상업적
        있는 사람이었고 일반 콜렉터들이 감히 가질 수 없는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        으로 소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우리도 지금 열심히 노력하고 있
        을 많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작품을 사 모은 사람      지만 다른 산업분야의 성장속도나 상업적인 성과에 비하면 미술분야는 아쉬
        은 아니었다. 대단한 작가들이 무명이었을 때 작가들에게 물감값이나 보태라        움이 많다.
        는 차원해서 사준 작품들의 가치가 수백억대를 호가하게 되었지만 정작 그녀
        는 살아생전 작품을 한 점도 팔지 않았고 매우 검소하게 살다 외롭게 죽었다.      우리나라 정부도 다각적으로 미술분야를 지원하고는 있는데 현장에서 체감
                                                        할 수 있는 수준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젊은 작가 지원보다 자기 화풍을 확
        내 짧은 식견으로 서울이 뉴욕미술시장의 성장과 발전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        립한 중견작가 지원이 더 밀도높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너무 젊은 작가 위주
        는 것 같다. 물론 자본의 규모나 콜렉터 수로 따지면 비교가 안 되지만 1950    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게 안타깝다. 될 인재들을 밀어 주는 게 성과주의
        년대 미국의 콜렉터들도 자국의 작가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한국미술이 성장        에서는 더 필요한 선택이다. 우리는 젊은 작가보다 중견작가의 삶이 더 척박
        하려면 우리 작가들을 아끼고 사주는 콜렉터들 수가 국내에서 비약적으로 늘        하다. 어떤 지원도 없는데다 경력이 붙었다고 구매자들이 앞다투어 사주는 것
        어야 한다. 중국미술시장의 성장을 봐도 그러하다.내한하는 무수한 해외 유명       도 아니기 때문이다.
        콜렉터들도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하고 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혈액이다. 혈액이 돌지 않으면 죽듯이 미술계에 돈이
        오늘날 우리 미술계가 어려운 것은 국내 콜렉터들의 관심이 우리 작가에게         돌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그러니 돈 없이도 예술하라고 등 떠밀지도 말고
        있지 않다는데 있는 것 같다. 과거의 미국도 그러했다. 그런 콜렉터들의 관       예술가는 돈을 멀리해야 한다는 오만을 부리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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