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2019년05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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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권 컬럼
호렵도 8폭병풍-지본채색 각76×34cm 조선민화박물관
1970년대 민화 이 글에서 “민화는 비전문적인 화공, 장인들이 대중의 그림에 대한 욕구를 채
워주기 위한 그림이다” 라고 언급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민화는 벽사진경(辟
邪進慶)의 염원, 신앙과 생활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마음을 솔직하
연구 활동 고 자연스럽게 나타낸 전통사회의 산물이라고 정의 내렸다.
한편 이우환은 일본에서 1975년에 《이조의 민화(청담사:일본)》 를 발간해 민
김용권(겸재정선미술관 관장) 화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민화를 평민, 서민의 습관화된 대중적
사회인의 그림이라 설명했다. 또 다른 한편 1975년, 시와지 쇼오이치로(志和
池昭一郞)는 《李朝의 民畵》를 발간하였다.
조자용 민화 연구 활동에 이어 김호연은 1971년, 민화를 민족의 미의식과 정
감이 표현된 ‘겨레 그림’으로 정의 내린 《한국 민화》 를 발간하였다. 또한 그는 이밖에도 ‘중앙일보사’가 1977년부터 내놓기 시작해서 80년대에 마무리 지
1972년, 김기창이 수집한〈효제도孝悌圖〉 를 자료삼아 《공간》7월호에 민화 문 은 《한국의 미》24권이 출간 마무리되었다. 또한 최순우, 김기창, 권옥연, 변종
자도의 도상을 분석한 논문을 실어 주목 받았다. 하, 박용숙 등 미술사가, 화가, 작가, 수장(收藏)한 사람들이 전시회와 글을 통
해 한국 민화의 멋과 재미, 아름다움과 그 뜻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
이어 이구열은 1972년, 《한국근대미술산고》에 “조선시대에는 비전문적인 무 듯 1970년대 중후반부터는 민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민화 관련 출판물
명 화가나 떠돌이 화가들도 전문 직업화가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 이 대거 발간되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변변한 미술 전문 잡지 하나 제대로 발
다” 라고 서술하여 민화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켜 나갔다. 같은 해인 1972년, 행되지 못하던 그동안의 상황을 감안하면, 〈계간미술〉, 〈선 미술〉, 〈미술과 생
이동주는 《한국회화소사》에서 삼국시대 이래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화공(畵 활〉, 〈미술춘추〉 등과 같은 잡지가 대거 발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당
工)의 그림이 주류를 점하고 있으며, 감상화 보다는 생활 장식화인 궁궐과 절 시에 민화에 대한 연구는 재야 민화연구가를 비롯해 미술평론가들에 의해 주
등의 벽화, 예배용의 신선, 부처 그림, 고사(故事), 인물, 벽사, 세화(歲畵) 등 로 이루어져 왔었다. 그런 까닭에 다양한 시각에서의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
이 훨씬 많다고 서술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1974년, 《일본속의 한화(韓畵)》 지지 않았으며 그저 민화의 종류를 나열하는 정도가 전부였다는 것을 지적하
와 1977년, 《한국 민화》라는 책을 발간해 민화를 세상에 더욱 크게 드러냈다. 게 된다. 물론 위와 같은 민화에 관련한 연구 열기 덕분에, 1970년대 중반부터
1977년, 김철순은 《공간》 에 〈한국미술의 깨달음과 생명〉 을 발표했는데 그는 는 민화 붐이 일어나고 국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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