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2019년05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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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GP 폴 델보, 불안한 거리, 200×247cm  1941


            로 들면,몽유병에 걸린 듯한 3명의 발가벗은 여인들이 마치 시간 속을 걸어가      벽촌인 뵈르네에 은거하면서 1980년대말 시력을 잃을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
            듯이나란히 적막한 사원들을 지나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작품에 해골이 등       리다가 97세에 세상을 떴다.
            장하는 『잠자는 비너스(1945)』는, 히틀러 정권이 브뤼셀을 폭격하는공포와 고
            통의 분위기, 억압된 도시를 비너스의 아름다움과 대비시키며 역설적인 알레        국내 화단의 최고령 현역 작가인 김병기 화백이 2019년 4월 10일 103세 생일
            고리로 표현해 냈다. 전쟁과 평화라는 극한적 대조 상황을 절묘하게 화합시킨       에 개인전을 열었다. 『여기, 지금』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고 서울 평창동 ≪가
            패러독스의 모순이, 종국에는 전쟁의 아픈 기억의 독소를 사랑이라는 해독 제       나아트센터≫에서 3년만에 개최한 전시다. 신작 회화 20점을 선보였다. 여전
            를 풀어냄으로써 중화시킨 생명체로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위        히 목소리엔 힘이 넘쳤고 기억력도 좋았다. 화가로서,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안만으로 결코 잊혀지는 고통이 아닌지라, 끝내 『매장(1951)』에 이르러서는 해   미술사를 꿰뚫으면서 논리적으로 작업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단순히 세월
            골들이 다른 해골들을 땅에 묻고 있는 광경을 화폭에 담음으로써 허무주의로        만 쌓아서 이룩한 '장수의 열매’ 라기보다, 고의로 길을 만들어서라도 남들이 가
            까지 도피하게 된다. 어찌 보면 이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전혀 낯설어 보이지    지 않는 곳으로 찾아간다. 비록 육체는 세상 풍파에 시달렸어도 정신만은 꾸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사실 그가 살아왔던 역사적인 배경을 더듬어 가다      하게 청춘인 오리지널 예술가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1934년 일본 ≪아방
            보면 이런 추정이 가능해진다.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제1    가르드양화연구소≫에 입소, 그곳에서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 미술을 접한후
            ㆍ2차 세계대전의 혼란과 피폐함을 몸소 다 겪어낸 세대이니만큼 그야말로 산       추상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일본에서 공부를 마친 후, 1939년에 한국으
            전수전 ‘역전의 노구’가 기억하는 것들이 오죽 독기를 내뿜었을 것인가. 그렇지     로 돌아온 김 화백은 50년 ≪미술협회≫를 결성하고, 『피카소와의 결별(1951)
            만 그는 한계를 절감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적인 체념을 극복해내고 달관의 경        』이라는 글을 발표하며<제8회 상파울루비엔날레>에커미셔너로 참여하는등,
            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그만의 고유한 미학적 세계를 창출해 내었      ‘추상화가 1세대’ 대표주자로써 전위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1965년부터 미국
            기에, 동시대 작가인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에서 드러난 ‘경직된 날카로움’과 대     에서 활동하다 70이 넘어 국내화단에 복귀했다. 팔순에는 로망이었던 파리에
            비되는 극대 점에 서 있을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의 전시회는 유럽뿐만 아니     서 1년간 작업활동을 했고, 2017년 101세에 국내 최고 권위, ≪대한민국 예술
            라 전 세계적으로 호평 받아 남•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도 초대전이 열         원 회원≫으로 선출됐다.마지막으로 103세 생일 잔칫상 대신 개인전 『여기, 지
            릴 정도였다. 주로 이탈리아와 벨기에 등지에서 큰 상을 받았으며, 1950~62년   금』을 펼치고 있다. 한국 최고령 작가의평생을 다 바친 개인전 기록이다. 지난
            에는 브뤼셀에서 미술대학 교수로 일했다. 전쟁 이후에는 작가로서의 삶마저        해 폐렴으로 취소된 전시를 재개했기에 더욱 감개무량하다. 아무쪼록 우리 화
            별다른 굴곡 없이 꾸준히 지속되어준 덕분인, 1982년 벨기에 북부 해안에 인     단의 모든 미술인들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어떠한 시련에 부딪히더라도 흔
            접한도시 신트이데스발트에 그의 작품만을 소장하는 ≪폴 델보 박물관≫이 개        들림 없이, 영원히 늙지 않는‘새로운 정신’을 바탕으로 한 고유의 미학 세계로
            관되었다. 천성이 원래부터 타인 앞에서 튀려고 하지 않았고 늘 자신에게는 엄      정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격히 대하며 신중했던 폴 델보는, 아내와 함께 세인의 이목을 피해 플랑드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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