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2019년05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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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데사우 바우하우스 무대와 식당
[그림 4] 데사우 바우하우스 학교건물
바우하우스는 명확한 프로그램을 지닌 단체가 아닌, 하나의 이념이었다.
…… 단지 이념만이 이렇게 크게 파급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미스 반데로에 그 이념을 널리 파급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우하우스가 새로운
형의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체였기에 가능하였다.
초교육은 그로피우스가 데사우기에 의도한 대로 사회의 산업화라는 일상성
세계에 대한 공헌, 즉 디자인 전공 교육의 초급 입문 과정만을 지향한 것은 아
니며 이를 되돌아보고 반추하는 기능도 있었던 것이다.
바우하우스는 참여한 디자이너나 건축가, 화가 들이 이런 전체성, 다양성을 전
제하고 지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활동은 전위적 조형 운동, 새로운 교육 활동
등 다면적인 결과를 낳았다. 또한 바이마르에서 데사우로 이동했으며 마지막
은 베를린에서 끝나는 등 그 성격도 매우 변동적이었으며 자유도와 허용도가
큰 교육기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자유도와 허용도를 지닌 바우
하우스는 단지 그로피우스의 강령인 ‘예술과 기술과의 통일’로 상징되는 합리
성과 기능성만을 우선하는 기관이 아니었다. 다양한 개성 집단이었고 제작 공
동체였던 것이다. 그로피우스 자신도 1968년 9월 20일 런던 강연에서 바우
하우스를 단지 실리주의적인 디자인 방법을 가르치는 학교로 보는 것은 오해
이고 그곳에서 교사들은 협력하면서 모든 조형에 객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각적 조형언어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으며, 다양한 의견의 서로 다름을 잇
는 연결고리는 ‘조형철학’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오늘날 디자인을 둘러싼 사
회적, 경제적 상황은 바우하우스의 시대와는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100년이
지난 오래된 디자인학교의 기초교육 모델이, 이역만리 한국에서도 하나의 고
정된 규칙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앞서 살펴본 전체성, 양의성, 횡
단성, 연계성의 힘과 ‘조형철학’을 추구하는 자세가 끊임없이 생명력을 부여
[그림 6]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판된, 본인을 포함하여 17명의 앤솔로지 해왔고, 우리는 미처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으나, 은연중에 그 혜택을 누려
2019.4.1. 안그라픽스 8인 공저 앤솔로지 왔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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