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2020년1월 전시가이드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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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권 컬럼












                                                            이쯤에서 우리가 깊게 주목해야 할 것은, 순수 작가들은 민화 작가들과는 전
                                                            혀 다른 형식으로 민화 제재를 작품에 활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른바 이들은
                                                            단순히 민화의 도상이나 기법 차용에 머물지 않았으며 동시대의 정보와 일상
                                                            적인 사건을 접목한 신선하면서도 독창적인 작품을 발표하였기에 민화장르
                                                            와 크게 차별된다고 하겠다.

                                                            아무튼 장욱진은 민화적 요소를 통해 자신만의 현대적 어법을 구축했던 대표
                                                            적인 미술가이다. 그는 동심적 상상력과 순수한 감정으로 한국인의 삶과 정서
                                                            가 담긴 초가집이나 기와집 그리고 가족이나 강아지, 소 등의 제재를 선택해
                                                            소박한 민화풍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개, 까치, 집과 나
                                                            무, 해와 달 등의 도상을 반복하거나 무심하게 배열하는 방식은 다분히 민화
                                                            적이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윤곽선과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색채
                                                            그리고 긴 이야기가 있을 법한 형상은 전통 민화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러
                                                            나 민화와의 형태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는 차이가 분명하다. 즉
                                                            장욱진의 작품에는 기복과 벽사를 위한 민간 회화와 그 실용적인 목적과 세
                                                            속적 기능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민화가 상징하는 ‘염원’이 배제된 무위의 세
                                                            계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어찌보면 그의 작품은 아동이 그린 동화책과 같은
                                                                      1)
                                                            느낌을 받기도 한다. 어떻든 장욱진의 그림은 소박하면서도 세련되고 창의적
                                                            이며 산수화와 민화의 번안, 전형적인 문인화를 연상시키는 가장 한국적인 회
                                                            화, 혹은 동양화같은 서양화라는 평을 듣고 있다. 2)

                                                            김기창은 창조적 영감을 민화에서 찾았는데 그는 민화의 해학성을 현대적으
                                                            로 그려냈다. 그는 한국적이면서도 순수한 인간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해 놓
                                                            은 것이 민화임을 알게 되었다. 이에 그는 민화의 무계획한 그림이나 잡기 어
                                                            린 그림들을 소박하게 표현하여 ‘바보화가’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다. 대표작
                                                            중〈바보산수〉,〈꽃 그리고 새〉등은 전체적인 구도와 형상은 민화에서 그대로
                                                            따왔다고 볼 수 있으나 김기창 특유의 활달한 붓놀림 그리고 해학성이 조화를
                                                            이루는 화면으로 변용을 꾀하여 좋은 평가를 얻어냈다. 이와 같은 그의 화풍은
                               쥐(子) 그림  지본. 66×39cm  조선민화박물관 소장
                                                            1990년대 사석원이나 김병종 그리고 이왈종 등에게 이어졌다.  3)
                                                            변종하는 한국적 이미지를 새롭게 탐구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75
            민화를 차용, 응용한                                     년 현대화랑 전시회에서 민화 제재의 초草·십장생·새 등의 시리즈 작품을 발
                                                            표하였다. 이는 요철 위에 마포를 씌우고 색을 칠하는 새로운 기법을 시도한
                                                            것으로, 이와 같은 그의 부조식 그림에는 민화적 감성과 한국의 서정성 그리
            순수 작가들.Ⅲ                                        고 생동감이 잘 나타나 있어 주목된다.

                                                            이밖에도 최영림崔榮林(1916〜1985) 역시 일찍부터 민화를 자신의 회화세계
            글 : 김용권(겸재정선미술관 관장)                             에 차용하여 현대화를 지향하였다. 그는 한국전래동화 전설, 설화를 주제로 많
                                                            이 그렸다. 또한 전혁림全爀林(1916〜2010)은 민속적인 소재로 화려한 색채
                                                            추상화를 선보였으며, 그리고 손동진孫東鎭(1921〜 )은 오방색으로 쾌활한 색
            (2) 순수 작가들의 민화 차용 1기(1971〜1980)                 면 추상화의 세계를 선보였다. 그러나 이들 순수 작가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민
            1970년대에 들어 새마을 운동과 유신으로 인해 민화나 무속은 미신타파의 목      화의 상징적 특징보다는 조형적 특이성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순
            표가 되었으며 급기야는 이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었다. 그런 가운데에       수 작가들에게 민화는 전문 화가로서의 그들 자신들에게는 없는 소박함, 꾸밈
            서도 순수 작가들은 여전히 민화나 무화巫畵 그리고 불화를 응용하거나 차용        없는 건강한 미의식으로 보여 졌기 때문일 것이다.
            을 통해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특히 장욱진張旭鎭(1917〜1990),
            김기창金基昶(1913〜2001), 변종하卞鍾夏(1926〜2000) 등의 작가들은 민
                                                            1)김미정〈한국 현대미술의 민화 차용〉《한국 민화의 과제와 나아갈 방향》 p.94참조. 한
            화가 가진 소재의 해학성과 자유분방한 기법 그리고 강렬한 색채에 깊게 매
                                                            국민화학회. 2014.9.20.
            료되어 민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였다. 또한 그들은 이에 머물지 않고 민화        2) 박영택《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p.123참조.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2014. 서울
            를 감상하면서 도상이나 공간구성 또는 상징성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         3) 김미정〈한국 현대미술의 민화 차용〉《한국 민화의 과제와 나아갈 방향》p.94참조. 한
            을 출현시켰다.                                        국민화학회. 201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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