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2020년1월 전시가이드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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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누치미술관의 이응노 화백 컨퍼런스 포스터, ⓒexposition-paris.info
류를 갖던 이응노는 수덕여관과 정이 들었다. 1944년 결국 나혜석이 이곳을 로는 아르퉁, 카임, 라센느, 술라쥬, 창대치엔, 쥬린, 후지타, 자오우키 등 쟁쟁
떠나자 아예 수덕여관을 사들여 다음 부인인 박귀희 여사에게 그 운영을 맡긴 한 파리 문화계의 인사들이 참여했다. 1980년을 기점으로 1989년 작고하기
다. 아마도 파리에 대한 환상과 그림 열정을 더욱 강하게 고취시켜 주었던 스 까지 제작된 『군상』 연작은 작가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집약적으로 담겨있는
승 나혜석과의 인연과 그녀의 체취가 남겨진 수덕여관을 그냥 버리기에는 너 이응노 예술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무나 안타까워 그랬는지 모른다.
최근 ≪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은 2019년 12월10일부터 20일까지 ‘제6기’
이응노는 이곳을 6.25때에는 피난처로 사용하고 수덕사 주변의 아름다운 풍 파리 <이응노 레지던스 결과 보고전>을 개최했다. 이에 앞서8월 1일부터 10
광을 화폭에 담는다. 1944년에 나혜석이 수덕여관을 떠난 후 여기저기 떠돌 월 28일까지 3개월간 선발된 입주작가 3인은 파리 근교 보-쉬르-센에 위치
다 1948년에 죽는다. 그 후 1958년 이응노는 21세 연하의 연인이자 제자였던 한 이응노 아틀리에에 체류하며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작가들은 프
박인경과 박귀희 여사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융세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떠 랑스에서 유럽 동시대 미술의 경향을 파악하고, 이응노 유족들과 교류하며 새
난다. 이응노는 1956년 프랑스 평론가 자크 라센느의 초청을 받은 후 1958년 로운 작품을 창작했다. 아울러 그 결과물을 올해 9월 파리이응노레지던스에
51세의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후 서독에서 1년 간 체류하며 본, 쾰른, 서 열린 오픈 스튜디오 전시에서 선보였다. 이미 수 차례에 걸쳐 해당 레지던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인전 및 박인경 화백과의 부부전을 열었다. 스 프로그램을 지속 후원해왔던 류철하 대표이사는 “이번 파리이응노레지던
스 결과보고전을 통해 지난 3개월 동안 유럽미술계를 경험한 지역의 작가들
이 당시 이응노는 대상의 사실적 모방에서 벗어나 스스로 <반추상적 표현>이 이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
라고 언급한 실험적 양식을 발전시켰다. 독일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 이응노는 도 대전 시민들이 레지던스 작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파리 이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흐름이었던 <앵포르멜> 회화 양식을 흡수한 후 전통 응노 레지던스가 지역 청년작가들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더 힘
필묵과 결합해 동양적 감수성이 가미된 새로운 추상을 창작했다. 1962년에는 쓰겠다.”고 밝혔다. 물론 이토록 적극적인 후원 의지에 대해서, 가뜩이나 힘든
<앵포르멜> 운동을 견인했던 ≪폴 파케티 화랑≫과 전속계약을 체결해 안정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지역 화단의 대표단체로서는 지속적으로 지원을 아
적인 작품 창작기로 들어서게 된다. 폴 파케티 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 『이응 끼지 않은 점 만으로도 찬사와 응원을 보내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국내 화단
노, 콜라주』에서 콜라주 기법을 사용한 추상 작품을 대거 선보였으며 자크 라 전체의 진화와 발전에 관한 사안으로 한 단계 더 높여 고려해 볼 경우, 뭔가 아
센느를 비롯한 당대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는다. 이후 이응노는 파리를 중심 쉬운 감이 있다. 기실 이응노 화백이 이 지역 출신으로서 세계적인 작가로 자
으로 독일, 미국, 스위스, 이탈리아, 덴마크, 벨기에, 그리스, 영국, 일본, 한국에 리매김한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이제는 우리 지역과 너희
서 개인전과 그룹 전 각각 50여회를 열며 열정적인 활동을 펼쳤다. 1964년 61 동네를 편가르지 말고 우리 화단 전체의 문화 유산을 상속해 나갈 미래 세대
세의 이응노는 세르누치 미술관장 바딤 엘리세프와 함께 ≪파리동양미술학 에게 보편적인 귀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쪼록 고암 이응노 화백
교≫를 설립한다. 정기적인 사생과 수업을 통해 프랑스인들에게 서예와 동양 이 평생을 두고 초지일관했던 도전과 응전의 ‘새로운 정신’을 물려받은 후학들
화의 기초를 가르치고 동양미술의 아름다움을 유럽에 전파했다. 설립 후원자 이 전 세계 무대를 향해 뻗어나가기를 간절하게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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