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1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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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副司直)을 낳으니 휘는 승효(承孝)이니 이분이 공의 아버지이다.
공이 국초(國初)를 당해 세음(世蔭)으로 적순부위에 임명되었다가 돌아가시자 부인 강
릉최씨(江陵崔氏)와 같은 자리에 다른 봉분(封墳)으로 장례했다. 부인 최씨의 아버지는
대해(大海)요 할아버지는 사정(司正) 운림(雲霖)이요 증조는 단천군사(端川郡事) 첨(瞻)이
다. 아들 하나를 낳으니 무공랑 휘 세현(世賢)인데 배(配)는 안인(安人) 연기위씨(燕岐魏
氏)이다. 그가 아들 셋을 낳으니 효력부위(效力副尉)는 휘가 근(瑾)이요 배는 단인(端人)
밀양박씨(密陽朴氏)요 수의부위(修羲副尉) 휘는 당(璫)이요 배는 단인 강릉최씨요 다음의
휘는 영(瑛)이다. 근(瑾)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으니 아들은 진위장군(振威將軍) 주은
(周隱)이요 다음은 상은(商殷)이니 충좌위호군(忠佐衛護軍)이요 하은(夏殷)은 문행(文行)
이 있었다. 배는 정부인 강릉최씨요 사위는 남양(南陽) 홍확(洪確)이니 만호(萬戶)이다.
당(璫)이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으니 아들은 윤웅(允雄)과 윤영(允英)이요 사위는 참봉
(參奉) 강릉(江陵) 김인록(金仁祿)이다. 하은이 아들 둘과 딸 넷을 낳으니 아들은 형조좌
랑(刑曹佐郞) 성탁(聲倬)이니 배는 의인(宜人) 연일정씨(延日鄭氏)요 다른 아들은 봉화훈
도(奉化訓導) 준(儁)이니 배는 의인 연일정씨이며 사위는 남대익(南大翼) 정사교(鄭師僑)
정덕용(鄭德容) 진극충(秦克忠)이다. 윤웅이 아들 셋을 낳으니 종계(宗繼) 종수(宗壽) 종
의(宗義)이다. 윤영이 아들 하나를 낳으니 기명(起溟)이다. 성준(聲儁)이 아들 여섯을 낳
으니 진윤(震尹) 진열(震說) 진언(震偃) 진익(震益) 진문(震文) 진창(震昌)이다. 진윤(震
尹)이 아들 하나를 낳으니 빈(鑌)인데 예(禮)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명이 아들
하나를 낳으니 찬(瓚)이요 찬이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으니 익(釴)과 사위 호군(護軍)
강릉 김시성(金始聲)이요 나머지는 다 기록하지 못한다.
지금 공을 장사 지낸지 이미 四, 五백년이 되어 그 사행(事行)을 징험할 수가 없으나
이름이 후세에 사표(師表)로 전하여 영원히 세시(歲時)의 제사가 끊어지지 않고있다. 후
손 일교(一敎)와 세영(世榮) 등이 장차 묘도(墓道)에 비석을 세워 무궁토록 전하고자 하
니 효자(孝子) 자손(子孫)의 마음 씀이 원대하다고 하겠는데 그러나 공의 쌓은 덕이 오
래 세상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았다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시(詩)에 말하기를
‘군자(君子)에게 효자(孝子)가 있네’라 하였고 또‘자자손손(子子孫孫)이 지켜서 이끌
라’고 하였다. 四백년 동안 쌓아온 효를 지켜 이끄니 세상에서 만약 이렇게 한다면 비
록 천백 세라도 알 수 있으니 이는 새겨 전할 만하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넘실거리는 동해(東海)가에 구호(龜湖) 언덕이 길게 뻗쳤네. 그 위에 두 봉분이 있
으니 덕 있는 선한 분의 묘이네. 비석을 세워 후세에 전하니 무궁히 효가 전하리라.
저 나무꾼들은 행여 허물지 말지어다.
병자년(一八七六) 十월 일에
통훈대부(通訓大夫) 전 홍문관수찬 겸경연검토관지제교(前弘文館修撰兼經筵檢討官) 함양(咸陽)
박주운(朴周雲)(一八二〇〜一八八八)은 짓고 장사랑(將仕郞) 진산(晉山) 강하중(姜廈重)은 전자(篆字)를 쓰다.
제5편 선조 행장·갈명기(先祖 行狀·碣銘記) 3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