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5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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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두어 안으로는 종족의 화수회(花樹會)를 열고 밖으로는 친구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시를 읊조리는 장소로 삼아 하루도 그냥 보내는 날이 없었다.
또 그 집 남쪽에다 돈대(墩臺)를 쌓아 한가한 이웃집 사람이 있으면 불러서 활을 쏘
아 한결같이 즐기다 세상을 마치니 후세 사람이 존경하고 사모하여 그 고개를 객당산
이라 하였다.
그 아들의 휘는 훈(勳)이요 자는 원충(元忠)이다. 젊어서 낙전당(樂全堂) 정두형(鄭
斗亨)공과 함께 같은 스승에게서 배웠는데 정공이 급제하자 공이 시를 지어 놀리니 그
시가 세상 사람들 입에 회자(膾炙)되었다. 음보(蔭補)로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었으
나 오래지 않아서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두문불출하며 뜻을 구하여 늙을 때까지 경서
를 읽으며 스스로 즐겼다. 일찍이 그 집에다 신당(新堂)이란 현판을 달아 자신의 호를
삼아 날마다 새로워지라는 뜻을 붙이니 그 존양(存養)하는 뜻이 이러 하였다. 고을 사
람들이 추중(推重) 마침내 그 마을 이름을 신당촌(新堂村)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 두 분의 아름다운 덕과 행실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와 고을과 나라에서 우러러
보았는데 이제 三백 년이 지나도록 산 이름과 마을 이름이 그대로 전해져서 지나다가
보는 자들이 모두 감탄하니 참으로 훌륭하다고 하겠으며 어진 사람들의 발자취가 더
욱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번 공의 후손들이 세대가 더 멀어지면 이런 자취가 사라질까
염려하여 옛터에다가 비석을 세우면서 나에게 비문을 청하였다. 내가 신당공의 만경대
(萬景臺) 기문을 지었고 이제 또 오산공의 유적을 얻고 보니 내가 비록 글을 잘 짓지
못하나 공의 풍도(風度)를 듣고는 흥기되는 바가 있어 그 행장을 살펴 대략 써서 보내
는데 일을 주관하는 자는 김군 원화(源華), 시대(始大), 원태(源泰), 시술(始述)이며 와
서 명문을 청한 자는 김원국(金源國)군이다. 모두 대대로 문학(文學)을 전해 받고 행실
이 순미(純美)하여 고가(古家)의 명성을 실추시키지 않으니 여기에서 전통 있는 집임
을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김씨들은 삼척에서 대대로 아름다운 덕이 있었네. 오산공이 태어나서 집안 명성 떨
쳤네. 남쪽과 동쪽에서 공적(功績)을 이루었네. 처음 뜻을 이루고는 호수와 산에서 한
가로이 수양하니 그 덕을 향리와 나라에서 존경했네. 이어서 신당(新堂)이 나와서 일
찍 문장으로 유명해지고 학문과 나이 숙성해져 자수(自首)가 되었네. 사람들 그 효제
(孝悌)에 흠탄하고 대대로 시례(詩禮)로 추앙했네. 그 아버지에 아들이 대대로 아름다
움 이었네. 저 오산 꼭대기를 바라보니 옛터가 완연하네. 산 이름이 이미 드러나고 마
을 이름에 근거가 있네. 아아, 자손들은 더욱 효에 힘쓸지어다. 이에 비석을 세워 향
기를 전하노니 내 비명이 백세 간들 사라지랴.
자헌대부(資憲大夫) 행공조판서겸지경연의금부사 동성균관사
오위도총부도총관(行工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事同成均館事五衛都摠府都摠管)
청풍(清風) 김원식(金元植)은 지음.
제5편 선조 행장·갈명기(先祖 行狀·碣銘記) 3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