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0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P. 380
18. 通政大夫 司僕寺正 金公 墓碣銘
金氏望三陟者는系出新羅悉直郡王渭翁之后라其麗不億에爲關東巨族이라日에有金君炯斗來
余曰吾家久不振文하고所間佚于火하여雖有宣祖可記之蹟이나何所徵乎아吾九代祖의諱는重蘭
이니通政大夫司僕寺正이요贈吏曹參判이니即悉直郡王之十四世孫이요都統使大將軍諱正暉의
六世孫也라高祖의諱는昆孫이니進勇校尉요曾祖의諱는達鍊이니修義副尉요祖의諱는禮宗이요
考의諱는其知라妣는失傳이라且祖之生卒年月日並皆佚하니譜此亦如是온况他蹟乎아墓在治北
道上面紅月山壬坐라舊有碣하니故土人洪鍾呂氏撰이라年代寢遠에笞蝕字沒하여今謀以改竪하
니願吾子는叙此世系與事實하여銘于隨道어널余謝無狀行可言이나炯斗固請曰雖積必之遂書其
言如此하니公의配는密陽朴氏니從公職封淑夫人衬焉이라朴氏考의諱는未詳이라擧四男하니彥
立麟立連立賢立이라彥立이娶蔚珍張氏承守의女하여二男이니得設貴設은嘉善이요麟立은娶南
陽洪氏하여一男이니貴吉이요連立은娶江華崔氏應濟의女하여一男이니貴澤이요賢立은娶江陵
崔氏弼東의女하여一男이니貴詰이라曾玄以下繁不盡錄이라嗚呼라大凡碑銘之義가莫不爲稱美
나然이나無其美而稱者는誣也오有其美而不稱者는蔽也니誣與蔽는君子不由하나니今公이雖有
可記之美나猶未免杞宋之歎也則宜其後承之所以齎恨也라亦不敢以一辭誣也나然이나前人云修
德于身하여靑報于天이라하니子孫之蕃이執大焉이리요公之所以有偉行蔭德을以此可見矣而何
恨乎無文蹟之傳하여不能耀然於牲石間乎아遂爲之銘曰想公之德兮여宜其麓之式 蕃이라瞻公
之藏兮여于吉岡之永存이라銘公之石兮여可百世之與言이라
崇禎紀元后五丙辰中秋上瀚에南陽洪樂燮은撰하노라
통정대부(通政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 김공(金公) 묘갈명(墓碣銘)
삼척의 망족(望族)인 김씨는 신라 실직군왕 위옹의 후손인데 그 숫자가 많아서 관동
지방의 거족(巨族)이 되었다. 하루는 김형두(金炯斗)군이 와서 말하기를‘우리 집안의
글이 떨치지 못하고 가끔 불에 타버렸으니 비록 선조의 기록할 만한 사적이 있더라도
어떻게 징험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九대조의 휘는 중란(重蘭)인데 통정대부 사복시정
으로 이조참판에 추증(追增)되었으니 바로 실직군왕의 十四세손이요 도통사(都統使) 대
장군 휘 정휘(正暉)의 六세손이며 고조의 휘는 곤손(昆孫)이니 진용교위(進勇校尉)요
증조 휘 달련(達鍊)은 수의부위(修義副尉)요 할아버지의 휘는 예종(禮宗)이요 아버지의
휘는 기지(其知)이며 어머니는 전하지 않습니다. 또 할아버지의 생졸 월일을 모두 실
전하였으니 보첩이 그러한데 더군다나 다른 사적이겠습니까? 묘는 삼척 치소(治所) 북
쪽 도상면(道上面) 홍월산(紅月山) 임좌로 비석이 있으니 고(故) 사인(士人) 홍종려(洪
鍾呂)가 비문을 지었습니다. 연대가 오래여서 이끼가 끼고 글자가 마멸되어 지금 고쳐
380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