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8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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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三대를 내려와 휘 복영(僕永)은 감사요 재전(再傳)하여 휘 자주(自柱)는 대사간
이요 四전(傳)하여 휘 해(偕)는 호부상서이니 모두 고려의 명신(名臣)으로 대대로 벼슬
이 이어졌다. 고조의 휘는 광유(光裕)이니 창신교위(彰信校尉)요 증조 휘 승효(承孝)는
부사직(副司直)이요 할아버지 휘 중순(仲淳)은 상장군이요 아버지 휘 난손(蘭孫)은 병
절교위(秉節校尉) 상장군이요 어머니 숙부인(淑夫人) 연일정씨는 주부(主簿) 준(準)의
딸이며 문충공(文忠公)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증손이다.
공은 성품이 깨끗하고 정직해서 큰 절개가 있어 평소 효렴(孝廉)으로 널리 알려졌
다. 겸하여 무예(武藝)를 닦아 팔 힘이 절륜해서 중종 三十五년 무과(武科)에 급제했
다. 항상 무술을 자부하더니 마침 삼포왜란(三浦倭亂)을 당해 큰 공을 세워 원종공신
에 녹훈되어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행경상도절제사동래부사(行慶尚道節制使東萊府使)
가 되어 치적이 크게 드러나 고을 백성들이 모두 칭송하였다. 벼슬을 사퇴하고 고향으
로 돌아와 여러 차례 벼슬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으면서 오산(梧山) 아래에 살면서
동생 척주군(陟州君) 휘 양보(良輔)와 함께 내외 객당을 지어 하나는 종족의 화수회(花
樹會) 모임을 열고 하나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글을 짓고 술을 마시는 장소로 삼았다.
그 집 동쪽에 또 돈대(墩臺) 하나를 쌓아 매년 봄가을 한가한 날이면 향당(鄉黨)의 벗
들과 음사례(飲射禮)를 행하여 지금도 사모하여 마지않다. 묘는 삼척부 서쪽 말곡면
(末谷面) 어문산(於文山) 선영 동쪽 국(局) 자좌(子坐)언덕이다.
배(配) 숙부인(淑夫人) 영양남씨(英陽南氏)는 진위장군(振威將軍) 유재(有梓)의 딸인
데 정숙하여 잘 모셨으며 묘는 합봉이다. 一남一녀를 두니 휘 훈(勳)은 호가 신당(新
堂)이요 벼슬은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이며 딸은 강릉(江陵) 김소은(金紹雲)에게 출사
하니 현감 광국(光國)의 아들이다. 三남一녀를 두니 맏아들 기(夔)는 충순위(忠順衛)요
다음 긍(兢)은 급제했고 다음은 길(佶)이요 딸은 강릉 최극명(崔克明)에게 출가하니 문
과에 급제한 참판 수헌(睡軒) 응현(應賢)의 증손이며 나머지 중외의 자손은 번성하여
다 기록하지 못한다.
아아, 공은 곧바르고 의협심을 품었으며 명철보신(明哲保身)하고 영리하고 깨끗하여 조
행이 돈독하여 훈록(勳錄)에 이름이 들었고 이름이 나라를 뒤흔들었으니 참으로 영특하지
않으면 편안한 분수를 알아 어찌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저 오산(梧山)에 정기가 모여서 어진 선비를 내니 재주와 문무를 겸비했네. 삼포왜란
에 공로를 드러내어 한 고을을 잘 다스렸네. 벼슬을 사양하고 귀향하여 농촌에 정을 붙
였네. 객당(客堂)에서 한가로이 지내면서 담소(談笑)했네. 신당(新堂)에서 선대의 일을 이
으니 그 풍류와 문채 천고까지 비추네. 내 묘비명 마멸되지 말아 후세까지 빛나리라.
경술년(一九一〇) 六월 일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중추원의장 겸 규장각
대제학(中樞院議長兼奎章閣大提學) 청풍(淸風) 김윤식(金允植)(一 八三五〜一九二二) 지음.
378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