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3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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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차(世次)를  알아보니  공의 휘(諱)는  광유(光裕)요  호는  돈재(遯齋)이니  고려  공민

                       왕(恭愍王)  때  사람이다.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  삼척군(三陟君)  휘  추(錘)의  아들
                       실직군왕(悉直郡王) 휘 위옹(渭翁)의 十二세손이다. 삼척군이 삼척에 봉해진 것은 고려에
                       굴복하지 않아서요 군왕이 실직에 봉해진 것은 큰 공훈(功勳)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직은
                       바로 삼척의 고호(古號)이니 김씨들이 삼척을 본관으로 삼은 것은 이때부터이다.


                        八세를  내려와  휘  정휘(正暉)는  도통사(都統使)  대장군이니  이분의  아들  해(偕)는  호부
                       상서(戶部尚書)요  그  아들  관(琯)은  중현대부(中顯大夫)  위위윤(衛尉尹)으로  치사(致仕)하
                       여  은거하였으니  바로 공의 아버지이다.  공은  삼척  심씨(三陟  沈氏) 서운관부정(書雲觀副

                       正)  공무(公懋)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공과  같은  무덤인데  삼척부  남쪽  三〇리  되는  근
                       덕면(近德面)  교곡(橋谷)  백련(百蓮洞)  신좌(卒坐)이다.  아들  셋을  두었으니  장남  승달(承
                       達)은  부사요  다음  승조(承祚)는  현감이요  다음  승효(承孝)는  부사직(副司直)이다.  부사직
                       이  아들  넷을  낳으니  맏아들  중순(仲淳)은  상호군(上護軍)이요  다음은  계순(季淳)이요  다

                       음은  말순(末淳)이요  다음  종순(終淳)은  적순부위(迪順副尉)이다.  공이  어려서부터  영리하
                       여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자라서는  강개(慷慨)하고  큰  절조가  있어서  항상  말하기를
                       ‘효도를 충성으로 옮길 수 있으니 집과 나라는 둘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가
                       면 반드시 승리를 거두니 임금이 그 노고를 생각하고 그 열(烈)을 장하게 여겨 높은 벼슬

                       로  보답하고자  하므로  공의  뜻은  아니지만  부득이하게  창신교위(彰信校尉)  비순위겸후령
                       중랑장(備巡衛兼 後領中郎將)이 되었다. 우왕(禑王)이 즉위할 때를 당하여 두 임금을 섬기
                       지  않겠다고  맹세하고는  향리로  은퇴하여  전왕(前王)의  큰  은혜에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
                       의  유훈(遺訓)을  지키며  자제를  효제(孝悌)로  가르치고  향약(鄉約)을  지켜  돈목하면서  사

                       는  집을  돈재(遯齋)라  편액(扁額)하고  세상에서  숨어  살  뜻을  두었으니  훌륭하다고  하겠
                       다.  역사책에  징험할  만한  자료가  없어서  그  가장(家狀)을  살펴  조사해  보니  사가(史家)
                       들이 빠뜨린 것이라고 하겠다. 원욱, 원국, 일교 이 세 사람은 어진 자손이라 하겠다. 능
                       히 천년 동안 사라지지 않을 자취를 남겨 그 선조를 드러내려고 하니 중랑장공은 후손을

                       잘 두었다고 하겠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삼척김씨는  군왕(郡王)에서  시작되었네.  중랑공에  이르러  그  아름다움을  계승해  성
                       을 충성으로 옮겼네. 세상을 피해 살았으니 그 자손이 대대로 번성하리라’



                                                                    기묘년(一八七九) 四월 하순에 숭정대부(崇政大夫)
                                    행이조판서겸판의금부사지경연춘추관사홍문관제학동지성균관사오위도총부도총관시강원좌빈객
                               (行吏曹判書兼判義禁府事知經筵春秋館事弘文館提學同知成均館事五衛都撼府都撼管侍講院左賓客)
                                                          풍산(豊山) 홍우길(洪祐吉)(一八〇九〜一八九〇)은 삼가 짓는다.
                                      정헌대부(正憲大夫) 행형조판서겸지종정경연춘추관의금부사동지성균관사 오위도총부도총관
                               규장각제학(行刑曹判書兼知宗正卿經筵春秋館羲禁府事 同知成均館事五衛都撼府都撼管奎章閣提學)
                                                                      완산(完山) 이병문(李秉文)은 전자(篆字)를 쓰다.
                                      통정대부(通政大夫) 좌부승지겸경연춘추관수찬관(左副承旨兼經筵春秋館修撰官)오천(烏川)
                                                                     정환익(鄭煥翼)(一八一九〜?)은 삼가 글씨를 쓰다.



                                                                    제5편  선조  행장·갈명기(先祖  行狀·碣銘記)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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