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6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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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朝散大夫 永興敎授 孝子 金公 墓碣銘
眞珠之北坪에古有三孝하니其一은孝街金公이라生有異質하여嘗歲失稔에負米養親하고母得
惡疾에燒指以進에母病遂愈라父喪에廬於塚下하고每上塚悲號하니戾蟲이爲之哀鳴不去라鄉里
가皆稱孝感所致라하더라宣朝戊寅에旌閭하고府使許公穆이爲文祭之日爲敎後世百代之勸이라
하니嗚呼라公之所以爲公을可知也己라墓在豆淵内喳洞癸坐原이라尚無顯刻하여后孫漢榮이謁
銘于余어널畧辭不獲하여按狀하니公의諱는鎌이니永興敎授요三陟人이니悉直郡王渭翁의后라
高祖의諱는興道니府使요曾祖의諱는自南이요祖의諱는麗英이니郡守요考의諱는邦潤이니恭奉
이요妣는江陵崔氏石衡의女니有婦行이라配는橫城高氏니墓는合树라有一男一女하니男은安慶
이요 女는適恭判金汝契이라孫男은壽綱이요曾孫은尚晶尚哲尚珏이라銘曰 朝家崇禮는孝子之
門이라爲百代勸은大夫之言이라有斐孝子는終不可證이라
壬辰九 月重陽에唐城洪鍾凡 은 謹撰
조산대부(朝散大夫) 영흥교수(永興敎授) 효자(孝子) 김공(金公) 묘갈명
진주(眞珠) 북평(北坪)에 예전에 세 효자가 있으니 그중 하나는 효가(孝街) 김공이다.
태어나면서 부터 자질이 뛰어났는데 흉년이 들자 몸소 쌀을 져다가 부모를 봉양하였고
어머니가 병이 들자 손가락을 태워 올리어 어머니 병을 낫게 하였다. 아버지 상을 당해
서는 무덤 아래에서 시묘(侍墓)를 살면서 매양 무덤에 올라가 슬피 울부짖자 벌레들도
구슬피 울면서 그곳을 떠나지 않으니 고을 사람들이 모두 효성에 감동한 소치라고 하였
다. 선조(宣祖) 무인년에 정려(旌閭)가 내려지고 부사(府使) 허목(許穆)이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냈는데 거기에서 말하기를‘후세 백대를 권면(勸勉) 할 수 있게 되었다.’라
고 하였으니 아, 공을 훌륭하다고 한 까닭을 알 수 있겠다. 묘는 두연(豆淵) 내등동(内
喳洞) 계좌(癸坐) 언덕인데 아직껏 비석이 없어 후손 한영(漢榮)(一八八七〜一 九0三)이
나를 찾아와 비명을 청하여 사양했으나 되지 않아 다음과 같이 쓴다.
공의 휘는 겸(鎌)이니 영흥교수(永興敎授)요 삼척인으로 실직군왕 위옹(渭翁)의 후손이
다. 고조 휘 흥도(興道)는 부사(府使) 요 증조는 휘 자남(自南)이요 할아버지의 휘는 여영
(麗英)이니 군수요 아버지 휘 방윤(邦潤)은 참봉이요 어머니 강릉최씨(江陵崔氏)는 석형(石
衡)의 딸로 부덕(婦德)이 있었으며 배(配) 횡성고씨(橫城高氏)의 묘는 합부(合祔)이다. 一
남一녀를 두니 아들은 안경(安慶)이요 딸은 참판 김여계(金汝契)에게 출가했다. 손자는 수
강(壽綱)이요 증손은 상정(尚晶) 상철(咼哲) 상각(尚珏)이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나라에서 예를 높인 효자의 집안이네. 백대 후를 권면하는 것이 대부(大夫)의 말씀
이네. 저 빛나는 효자는 길이 잊지 못하겠네.
임진년(一 八九二) 九월 중양절절(重陽節)에 당성(唐城) 홍종범(洪鍾凡)은 삼가 지음.
376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