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1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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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려고 하니 당신께서 세계(世系)와 사적을 써서 묘비명을 지어 주십시오.’라고 하
였다. 내가 적당한 사람이 아니라고 사양했으나 형두군이 굳이 청하므로 다음과 같이
쓴다.
공의 배(配)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니 공의 관직을 따라서 숙부인(淑夫人)인데 부
(祔)하였으며 박씨의 아버지 휘는 알지 못한다. 아들 넷을 낳으니 언립(彥立) 인립(麟
立) 연립(連立) 현립(賢立)이다. 언립이 울진장씨(蔚珍張氏) 승수(承守)의 딸에게 장가
들어 아들 둘을 낳으니 득설(得設)과 귀설(貴設)인데 다 가선대부(嘉善大夫)이다. 언립
은 남양홍씨(南陽洪氏)에게 장가들어 아들 귀길(貴吉) 하나를 낳고 연립은 강화최씨(江
華崔氏) 응제(應濟)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 하나 귀택(貴澤)을 낳고 현립(賢立)은 강
릉최씨(江陵崔氏) 필동(弼東)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 하나를 낳으니 귀철(貴詰)이며
증손 현손 이하는 번거로워서 다 기록하지 못한다.
아, 묘비명을 세우는 뜻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나 아름다운 사적이 없는데도
칭찬하는 것은 속이는 것이요 아름다운 행적이 있는데도 칭찬하지 않은 것은 가리는
것이므로 속이거나 가리는 짓을 군자(君子)는 하지 않는다. 이제 공이 비록 기록할 만
한 행적이 있지만 전하지 않는 탄식이 있으니 그 자손들이 이를 한스럽게 여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마디도 속이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인(前人)이 말하기를
‘자신의 몸을 수양하여 하늘에 갚기를 책임 지운다.’라고 하였으니 자손의 번성함
보다 더 큰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공의 위대한 행적과 음덕(蔭德)을 여기에서 알 수
있는데 어찌 전하는 문적이 없음을 한탄하여 비석에 기록하지 않겠는가?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공의 덕을 상상하니 그 자손 마땅히 번창하겠네. 공의 무덤 바라보니 좋은 명당(明
堂) 으로 영원히 전하리라. 공의 묘비명을 지으니 백세 후 까지 할 말이 있게 되었네.
숭정(崇禎) 기원(紀元) 후 五 병진년(一九一六) 중추(中秋) 상한(上瀚)에
남양(南陽) 홍낙섭(洪樂燮)은 지음.
제5편 선조 행장·갈명기(先祖 行狀·碣銘記) 3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