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3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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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세상을 피해 살 생각으로 만년에 적노리에서 살면서 산수(山水)에 마음을 붙이

                       고 자연과 더 불어 즐기다가 세상을 마쳤는데 묘는 본동(本洞) 광대산(光大山) 유좌(酉
                       坐) 언덕이다. 세월이 오래 되어 비면(碑面)의 글자가 마멸되었기 때문에 이해 중춘(仲
                       春)에  후손  한종(漢宗)  흥주(興珠) 두  분이  표석을  세울  뜻으로  선조  가선공의  행적을
                       가지고  나를  찾아와  비문을  청하는데  내  식견이  천박  하고  또  느리었으니  어떻게  훌

                       륭한  비문을  지을  수  있겠는가?  굳게  거절했으나  더욱  청하므로  그  추원감모(追遠感
                       慕)하는 정성을 아름답게 여겨 고루함을 잊고 쓰기로 하였다.

                        그  세차(世次)를  상고하건대  공의  큰아들은  자성(自成)이요  차자는  시명(始明)이며

                       그 이후는 많아서 다 기록하지 못한다. 세대가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소목(昭穆)의 차
                       례가  조리가  있어  환하게  전하며  그래서  실전하지  않고  잘  보존하며  세덕(世德)을  잘
                       이어오고  있다.  이런  점은  명문거족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니  어찌  세대마다  현철한
                       자손이  있어서  효우(孝友)로  모범을  보이고  문학(文學)이  끊임없이  이어져  실추시키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랴?  참으로  훌륭하다고  하겠다.  김씨  집  안에  천년이  가도  사
                       라지지 않을 자취가 있어서 선조 가선공의 유훈(遺勳)이 드러나니 더욱 성대하다 하겠
                       으며 아름다운 일이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우리나라 세족(世族) 가운데 김씨 성이 제일 앞서네. 삼척김씨는 유독 그 연원이 깊
                       고  머네.  신라  이후로  지금까지  몇  천  년인가.  고관대작이  이어져  끊어지지  않았는데
                       김공에 이르러서는 재덕(才德)을 겸비했네. 좋은 땅을 가렸으니 자손이 만년까지 번성
                       하리.





                                                         숭정(崇禎) 기원 후 다섯 번 째 정사년 ( 一九一七) 二 월  일에
                                                                    밀양후인(密陽 后人) 박문극(朴文極) 은 삼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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