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9 - 신정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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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



                 서운 암 가는 길



                                                                    이 대 근


                 아침 햇살이 따사로운 날

                 통도사 서운 암 가는 길에
                 한 무리 금낭화 다소곳이 합장하고
                 화색 만연한 망초꽃 길가에 늘어서서 부지런을 떤다



                 바람이 흔들고 간 인연이 고개 들 때마다
                 아리도록 버텨 기다린 봄바람
                 부득이 역마살을 달아맨 보살들

                 묵언하는 산사죽 봉 소리에 발걸음 재촉한다


                 아지랑이 곰실대는 날 산사 가는 길에 울긋불긋 미소 띠고

                 한 시절 우려낸 진한 솔 향에 듬뿍 취하면
                 나도 모르게 양지바른 언덕에 가부좌 틀고
                 속세의 질긴 연을 난도질하고 있다



                 살며 한번쯤은 격정에 몸살을 앓았던 터라
                 무덤덤한 이별이야 면역이 생겨
                 속세의 가르침에 내려놓은 사리처럼 돌 한 섬 이고지고
                 바삐 가는 길 한적하기 그지없는데 멀리 뻐꾸기 생뚱맞게 운다.




                                                            제1회 신인문학상 |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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